[편집국에서] 9월 1일 쓰는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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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9월 1일 쓰는 첫 문장

경제사회부 이해미 차장

  • 승인 2020-08-31 08:10
  • 수정 2020-08-31 08:48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중도일보 이해미
이해미 차장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변신」, 프란츠 카프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소년이 온다」, 한강.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홀로 돛단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그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앞에 있는 소설책의 첫 문장을 읽어봤다. 눈을 감으면 그려지는 소설 속 풍경들, 착잡한 주인공들의 마음이 한눈에 읽힌다. 카프카, 야스나리, 한강, 헤밍웨이는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색의 시간을 보냈을지, 그 에너지가 담긴 첫 문장을 다시 한 번 곱씹어 읽어 본다.

그만큼 소설에서 첫 문장은 그 어떤 구절보다 중요하다. 필연적 사건들, 등장인물의 심리까지 작가의 의도는 언제나 첫 문장에 있다.

중도일보의 첫 문장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정론직필의 정신으로 써 내려간 문장들은 어느 소설 못지않은 강렬함이 있었을 테니까.

소설에 비유했지만, 중도일보라는 이름으로 쓰인 문장들은 오롯이 사실에 기반하는 '팩트'다. 자료실에 보관하는 오래된 신문을 넘기다 보면 치열했던 선배들의 시대가 보인다. 노트북이 아닌 육필 원고를 쓰던 집중력과 판단력, 기사를 잘라 블록 쌓기 하듯 신문 판형을 만들던 치밀함과 섬세함. 그 시절은 '기자', '신문', '언론사'라는 이름이 빛나던 시대였다.

신문을 만들기는 환경적으로 지금이 더 좋은 시대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때와 같은 치열함, 날카로운 시선, 시대를 관통하는 선구안은 왜 퇴색된 걸까. 자조적인 반성이긴 하나 '눈 뜬 김에 산다'는 말처럼 기자들마저 숱한 샐러리맨 못지않은 직장인으로 전락한 듯싶어 마음 한 편은 씁쓸함이 뒤엉켜 있다.

창간과 폐간, 그리고 복간.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중도일보의 69년 또한 환희와 아픔이 뒤섞여 있다. 간혹 "그 옛날 중도일보가 대단했지"라고 추억하는 독자들을 만날 때면 69년의 외길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독자들은 아마 다시 한번 냉철했던 언론의 역할, 수년이 지나도 가슴에 남을 기사 한 편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순아홉의 성장통은 독자들의 마음 읽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2020년 9월 1일. 다시 밝아온 첫날이다. 생일을 맞아 쓰는 우리의 첫 문장이 독자들 가슴을 울리는 에너지가 됐으면 좋겠다.

이해미 경제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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