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바야흐로 움추려 있던 벌레가 우레 소리를 듣고 절명한 듯하다가 다시 소생한 것과 같으니, 그 한창 자라는 가지를 꺾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에 있어서 하필이면 이와 같이 해야 하겠는가. 사학의 폐단은 일찍이 좌상(左相)을 대했을 때 이미 말하고 바로잡도록 하였다. 그러나 나는 형법(刑法)으로 그것을 다스리는 것은 불가하다고 여긴다. 태양이 떠오르면 반딧불과 횃불은 저절로 빛을 잃게 되며 원기(元氣)가 충실하면 외기(外氣)는 침범하지 못하니, 만약 내수(內修)와 외양(外攘)을 잘하여 먼저 근본을 다스려 시례가문(詩禮家門)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고가(故家)의 유풍(遺風)을 지키고 예교(禮敎)의 모범을 잃지 않게 한다면 저들 역시 앞으로 없어지기를 기약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 조선왕조 정조실록 정조 21(1797)년 6월 24일 계사 2번째 기사.
변화를 우매한 것으로 어여삐 여긴다. 태양에 반딧불이나 횃불은 절로 빛을 잃는 것이라며, 정도가 아닌 것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니 형법으로 다스릴 이유가 없다 한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의 지나친 견제로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 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박해를 받는다. 1만여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산된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판단이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도히 흐르는 물길은 누구도 막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때는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이다. 변화를 외면하거나 두려워하고, 안주하려 하면 할수록 변혁의 물살은 더욱 강력해진다. 그림으로 그 변화를 읽어보자.
김홍도의《병진년화첩》 중 <소림명월도>, 1796년, 종이에 수묵담채 26.7×31.6cm, 호암미술관 소장 |
그림 그리다 보면 소품이라고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작가의 의도를 살리기가 오히려 더욱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림명월도>는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성근 숲 사이로 달이 세상을 훔쳐보는 그림이다. 특정하기 어려운 잡목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우리 시골 뒷동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 연유로 다정다감하게 다가온다. 이상 세계나 상상의 세계, 명승 절경을 골라 그리던 것과 다른 일상적 소재의 선택이 단연 돋보인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기법이 바탕이다.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실경산수화라 한다. 실경에 작가 의도가 더해진 것이 진경산수화이다. 자연 그대로가 아니면서 그대로이다. 거기에 작가의 심상이 더해있다.
한적한 시골 밤길을 걸어 보았는가? 알아서 따라나선 달이 줄곧 밤길을 밝혀준다.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 달리 보인다. 쓸쓸함과 신비로움, 고고함과 한적함, 따사로움과 차가움, 다정함과 그리움이 공존한다. 서로 탓하거나 등지지 않는다.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수많은 별과 더불어 벌리는 하염없는 수다를 모두 들을 수 있는가? 자신도 모르게 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림 역시 별 것 없으면서 보는 이를 무한한 감성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인 묵의 농담으로 원근을 처리하였다. 앞으로 올수록 점점 묵의 농도를 짙게 하였다. 흑백 대조가 강할수록 앞으로 튀어나와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동양화는 평행원근법(다시점)을 사용하여 그림에 초점이 없다. 이 그림은 단일시점이다. 원근법 변화가 여타 그림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화폭에 넘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수작임을 직감케 한다. 십여 그루의 나무가 전부지만 숲과 수많은 이야기가 어둠에 숨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 또한 오늘날의 창작기법과 일맥상통한다. 소박하지만 변화가 가득하다.
김홍도의 눈이나 작품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창작의 세계는 각기 다른 저마다의 세상을 자신만의 몸짓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제일 소중한 가치이기도 하다. 또한, 저마다의 시점이 있다. 그것이 모여 시대정신이 된다. 그를 바로 보아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겠는가?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