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추억으로 그리는 진채화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추억으로 그리는 진채화

  • 승인 2020-08-20 10:07
  • 수정 2021-06-24 13:51
  • 신문게재 2020-08-21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20200821 추억으로 그리는 진채화(보령 웅천중 교감 김미희)
김미희 보령 웅천중학교 교감
두 번 배접한 화선지를 붙이고, 중탕해둔 아교물을 두세 번 칠해 햇볕에 말리면 화판이 팽팽해진다. 스케치를 한 뒤 곱게 갈아둔 분채물감을 아교물에 묻혀가며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그림을 그린다. 밑 작업 없이는 결코 그려낼 수 없는 번거롭고 지난한 진채화의 과정이다. 아이들 교육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 학생의 본분을 지켜 열심히 공부하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도록 일관성 있게 가르쳐온 내 27년 교사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의 진채화를 그려본다.

첫 발령지, 미산중 담임반 여학생들은 내 자취방에 몰래 잠입하여 내 생일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과일을 가져오고 계란말이, 호박전 등으로 잔칫상을 차려 놓고는 나와 절친한 가정선생님까지 초대하는 센스를 발휘하였다. 아이들이 목청껏 불러주던 생일축하 노래는 내 생애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

두 번째 근무지, 대천중 1학년이 대천해수욕장으로 소풍을 갔는데,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였다.

"선생님! 민수(가명)가 바닷물에 빠졌어요!"



우리반 반장이 물에 빠졌다는 소리에 놀라 바닷가로 뛰어갔을 때 몇 녀석이 나를 번쩍 들어 물가에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뒤 따라 오시던 선생님들이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그만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렸다. 점심도 굶은 채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니, 아이들이 용서를 구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만 껌뻑이는 녀석들을 혼낼 수도, 잘했다고 엉덩이를 토닥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년 차 여자선생님을 골탕 먹이고 싶었던 남학생들의 귀여운 장난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 저 결혼해요! 꼭 와주실거죠?"

한내여중 첫 해, 중3 담임반에서 번호가 끝번이어서 우리반 막내로 통했던 현아(가명)가 결혼을 한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졸업 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던 아이들은 가끔 나를 초대하곤 하였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엄마가 보고있다!' 라는 문구와 함께 내 사진을 칠판 위에 붙여놓고 열심히(?) 딴짓하던 녀석들.. 나는 늘 아이들에게 '학교엄마'임을 외치며 그해 같은 중3이었던 우리 아들 대하듯 사랑해 주었기에, 아이들도 나의 진심을 알아주었다. 대천여상 졸업 후 은행에 취업했다고 반창회하는 날 크게 한 턱 쏜 민지(가명), 대학졸업 후 작은 광고회사에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현아 등 반장 한별(가명)이를 중심으로 잘 뭉쳤던 아이들이었는데, 충남외고 학생회장까지 지낸 한별(가명)이가 성균관대에 합격한 후 골육종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나버렸다. 살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고, 친구들과도 변함없이 소통하며, 부모님 앞에서 언제나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참 기특했던 녀석이었는데 하늘나라에서도 리더십이 뛰어난 한별(가명)이가 필요했나보다. 한별(가명)이는 내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 사랑스런 아이다.

교사로서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한내여중에서 이임 인사를 하던 날, 가지 말라고 울며 붙잡던 미술동아리 아이들은 개교기념일 날 버스를 갈아타고 교감으로 근무하는 학교까지 찾아왔다. 실기대회를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과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장래 꿈, 고등학교와 대학 진학상담 및 진로에 대하여 함께 고민한 결과 이제는 미술교사가 된 제자가 여럿 있고, 사회에서 미술분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도 있어 보람을 느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2.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3.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