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에 형성된 치파오는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선진(先秦)과 양한(兩漢)시대에 시작되었으며, 중화민국 정부가 1929년 국가 예복의 하나로 확정했다.
하지만 50년대 이후 중국에서 치파오가 점차 외면 당하고 특히, 문화혁명기에는 ‘봉건사회의 잔재’,‘자산계급 문화’로 비판을 받았다.
80년대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재해석이 진행되면서 영상문화, 패션쇼, 미인 선발 등의 영향으로 치파오는 대륙지역 부흥은 물론 세계 각지의 패션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1984년 국무원에서 여성 외교원의 예복으로 지정됐으며, 1990년 베이징 올림픽대회부터 역대 대륙에서 열린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및 국제회의, 박람회에서는 치파오를 의복으로 선택했다.
2011년 5월 23일 치파오 수공예는 국무부가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해 치파오는 외관상 큰 옷깃을 오른쪽으로 여미는 여밈이나 반오픈 형식, 차이나 반 단추, 사이드 트림, 싱글 옷감, 옷소매까지 평면적으로 재단하는 특징이 있다.
고대의 치파오는 대부분 밋밋한 라인으로 품이 넉넉하고 양옆이 트여 있어 허리둘레와 치마의 치수 비율이 비슷했다.
근대의 치파오는 입체조형 시대로 접어들어 허리에 더 잘 맞는 서양식 옷소매 치파오로 변하여 기장이 길고 소매 길이가 크게 줄었으며 허리도 점점 잘 맞도록 디자인 됐다.
치파오는 여성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시류에 편승해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대명사로 시대에 따라 치파오의 형식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신중국 출범 이후 대륙에서 치파오를 입는 여성은 급격히 줄고 있다.시팽보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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