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이건 남선생이 사는 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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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이건 남선생이 사는 밥이야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8-1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나는 시골에 있는 처가에 가서 아내의 단짝 동무(유영식)를 만났다. 아내와의 동행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그렇지를 못했다. 내 곁에는 사랑하는 딸애와, 서울서 내려온 딸애 엄마의 친구, 또 옆엔 주인 없는 방석 하나가 있었으니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내는 친정에 갈 때마다 어린 시절 친자매처럼 같이 크던 친구 얘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 친구는 서울로 시집을 갔으면서도 죽마고우의 우정을 잊지 못해서인지 아내와 자주 전화 연락도 하고 이따금씩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아내와 그 친구는 산촌에서 자랄 때에 남다른 추억들이 많아서인지 유별난 향수병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둘은 진달래꽃 피는 고향을 그리며 자신들이 어렸을 때 봤던 꽃도 꺾고 수다도 떨며 하루 소일하다 오자고 했다.

그들은 수십 년 세월 속에서도 복숭아꽃 살구꽃 어우러진 밭둑길 논둑길에서 쑥도 뜯고 냉이도 캐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두 사람은 벼르고 별러 진달래꽃 만발한 고향에 가서 옛날 정취에 빠져보자고 약속을 하는 것 같았다.

허나 아내는 그런 약속만 해 놓고서 세상 가장 먼 곳으로 가 버렸다.

세상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빠서인지 발걸음을 재촉해서 가 버렸다.

어떤 약속이건 반드시 지키는 모나리자 미소의 여인이었는데, 친구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훌쩍 떠나버렸다.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약속을 대신 지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대행(代行)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래야만 하늘에 있는 아내가 친구한테 덜 미안할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방도가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동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보아하니 그 친구가 아내를 못 잊어하고,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는 향수의 정이 간절한 것 같아서, 대행(代行)으로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로 결심했다.

마침 아내의 친구가, 옛날 살던 집이며 아내의 어머니인 장모님을 보고 싶어 한다기에 가족끼리 모이는 장모님 팔순 생신 식사 자리에 그 친구를 내가 초대를 했다.

그 바람에 만난 자리에서 아내의 친구는 한이 반, 한숨이 반인 목소리로,"필모와 진달래꽃 필 때 만나자 약속했는데…"하며 수습이 안 되는 눈시울을 붉히며 눈을 끔적이는 것이었다.

자매 같은 그 둘은 동심의 고향이 그리워서 따뜻한 봄 진달래 꽃필 때 고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는데 그 시간을 못 참고 갔다며 아내의 친구는 한이 어린 말로 젖어드는 물기를 표 안 나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아내 친구의 눈을 공유하고 싶었는지 촉촉한 눈이 되어 그 친구 얘기를 더 들었다.

생전에, 아내는 친구들이 대전에 왔을 때, 자신이 점심을 사면서 하는 얘기가, "이건 남선생이 사는 밥이야. 이 점심은 남선생이 너희들 대접 잘 하라고 해서 사는 점심이니 특별히 더 맛이 있을 거야 맛있게들 먹어."

아내는 자신이 점심을 사면서도 남편의 위상을 높여주는 얘기를 했다며 아내의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평범한 얘기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또 말을 이었다.

"이런 사람이 친구(필모 : 아내 이름)였어요…."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새어나오는 눈의 액체를 닦으며 내가 응수로 던진 말이었다.

"친구지만 얘가 이렇게 교양 있고 남편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했던 애요."

우리 클 때 보던 진달래꽃을 명년 봄에 가서 같이 보자 했는데 하며 촉촉이 젖은 눈으로 한 얘기였다.

내 보기에도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에서도 향이 있었던 여인임엔 틀림없었는데 이런 너스레가 칭찬인지 탄식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것이었다.

순간 아껴서 숨겨두려 했던 그 액체가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보통 여인들 같으면 수다 떠는 여인들과 합세하여 남편의 험담이나 시댁 식구들 헐뜯는 얘기로 시간 보내기가 일쑤인데 아내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니, 남편의 낯을 세워 줄 정도 말 한 마디라도 예쁘게 하는 슬기를 가진 여인이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이건 남선생이 사는 밥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살아온 길 힘들어도 늘 마음 편케 해 주었던 그 아내의 미소가 살아오는 것 같았다.

힘들고 지쳐 있을 때, 여보 힘내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던 그 아내의 다소곳한 목소리가 환청으로 편을 드는 것 같았다.

못난이라 그런지 이리 마음이 아프고, 다소곳한 모습까지 어른거리는지 모르겠다.

지불 대가로 볼 수 있는 임이라면 사정이라도 해서 100원어치 밀회라도 하고 싶었다.

노산 이은상님의 양장 시조가 별난 악기로 둔갑하여 날 울리고 있었다.

뵈오려 안 뵈는 임 눈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되어 지이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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