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그래도 다행히 대부분 사람들이 방역 위생지침을 지키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물론 우리도 야외나 사람들이 덜 몰릴 것 같은 곳으로 한가한 시간대에 가게끔 여행 경로를 짰다.
넓은 정원, 한적한 나무 그늘에 앉아 마스크를 벗고 있노라니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느리게 움직이기로 했다. 조금 덜 다니고 덜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일정을 일찍 끝내고 숙소 근처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러 갈 식당을 찾는데 이번에는 좀 색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제주에 도착한 후,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맛집 리스트에 나오는 곳으로 갔다가 휴일이라는 이유로 두 집이나 허탕을 치고 그냥 근처 뒷길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지역민들을 위한 30년 맛의 전통'이라는 광고판에 어울리게 맛있는 제주 음식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는 행운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동안 제주를 방문할 때면 유명 맛집들에 대한 정보에 따르곤 했었다. 때로 제주도 지인들에게 대접을 받을 때도 역시 유명 맛집들에 가곤 했다. 최근 다시 늘고 있는 체중을 걱정하고 있던 차에 아침의 경험이 좀 다른 식사를 하고픈 마음을 먹게 했다. 이런 마음으로 검색창을 두드리니 현지인들이 올려놓은 듯한 식당 리스트가 나타났다.
그중 숙소와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식당은 재래시장 먹거리 골목을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아주 작은 곳이었다. 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필자는 손님이 없어서 안심이었다. 당연히 손님이 많은 식당이 맛집인 건 아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손님이 많은 곳에는 들어가기 꺼려지는 이상한 마음이 생긴 탓이다.
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메뉴를 훑어보고 옥돔구이를 2인분 주문했다. 그런데 주인장께서 구이만 먹지 말고 몸국과 구이를 하나씩 주문하라고 하였다. 옥돔구이 가격이 더 비싸니까 영업적으로 생각하면 상관하지 않아야 할 터인데 참견하는 게 조금쯤은 신선해서 그 말을 따랐다. 그런데 그때까지 필자는 몸국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국 종류라고 생각하고 끄덕거렸다. 조금 기다리자 둘이 먹기 충분한 크기의 옥돔과 처음 보는 몸국이 나왔다. 작은 크기의 살코기와 모자반이 들어있는 부드러운 국인데, 맛보니 먹을만하였다. 잘 먹고 있는지, 모자라는 반찬은 없는지 묻고 살펴주던 주인께서는 우리가 바닥이 보이도록 깨끗이 먹자 이번에는 또 다른 국물을 가져다주며 접짝뼈국이니 맛보라고 하였다.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며 궁금해하던 우리의 말소리를 들었던가 보다. 접짝뼈국은 담백함이었다.
맛나게 먹고 검색해보니 '몸'은 해초인 모자반의 제주어라고 한다. 돼지고기를 삶아낸 육수에 갖은 양념과 모자반을 넣고 끓인 후 메밀가루를 넣어 끓인 국을 몸국이라고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집안에 큰일을 치를 때 먹던 것으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향토음식이다. 관혼상제가 있는 특별한 날에 제주도에서는 주로 돼지를 잡았다고 하는데, 육지보다 식재료가 풍족하지 않은 섬에서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기 위해 수육을 만들고 남은 국물에 고기의 내장이나 뼈 등을 넣어서 오래도록 끓인 후 메밀가루를 풀어 넣어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가난한 시절, 그러나 함께 나누는 공동체 문화를 생각하게 하는 음식인데, 게다가 영양가도 매우 좋다고 한다. 접짝뼈국 또한 돼지사골을 우려낸 국물에 무를 갈아넣고 고아서 만든다더니, 그렇게 담백한가 보다.
처음 먹어본 몸국에 대한 소감을 감사 인사와 함께 전하며 어느새 손님이 꽉 들어찬 식당을 훈훈한 마음으로 나왔다. 제주 아즈망(아줌마)들도 육지 손님들에게 제주를 소개해서 뿌듯한 마음이겠지!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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