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진정한 향토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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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진정한 향토기업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8-03 08:55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종학 교수
며칠 전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나은행 콜센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내 기억은 40년을 건너 대전역과 충남도청 사이에 있었던 충청은행 본점 건물을 떠올렸다. 아직 경제발전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1980년대 초반, 충청은행 사옥은 대전 변두리 도마동 시골 청년에 불과했던 필자에게는 경이로운 높이의 고층빌딩이었다.

건물의 웅장함만 그러하랴? 경비 아저씨의 눈치를 보아가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노라면 찬 바람 불어대던 한겨울에는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피서지였다.

그 후 친구들이 충청은행에 입사하고, 이들을 만나러 가노라면 깔끔하게 정리된 사무실에서 잘 다려진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은행원들의 모습은 가난한 고시생 눈에는 부러움 그 자체였다. '그래, 젊은 날의 충청은행이 합병절차 등을 겪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저 간판의 하나은행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1997년 갑자기 불어닥친 IMF 구제금융사태는 국민 모두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많은 기업이 줄도산을 겪었다. 금융권도 예외가 아니어서 충청은행도 몰아닥친 회오리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 무렵 필자는 수도권 지역의 법원에서 민사재판을 담당하고 있었다.



매일 같이 밀려드는 금융기관 관련 분쟁 사건을 다루면서 IMF 사태의 어마어마한 후유증을 간접적이나 겪어보는 한편, 멀리 고향에서 들려오는 충청은행의 퇴출 소식을 안타까움으로 접하면서 가슴 먹먹함에 빠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산다는 것과 재판 업무에의 바쁨 등으로 충청은행에 대한 추억은 조금씩 나의 뇌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이렇듯 사라진듯했던 옛 충청은행에 대한 추억은 필자가 대학행정을 맡아보았을 때 다시 현실로 출두했다. 당시 필자는 취업률 제고를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대기업들의 출신대학 직원 비율을 조사해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전국의 수많은 대기업 중 하나은행만이 전국 유수의 대학들을 다 제치고 필자가 속한 대학 졸업생을 가장 많이 뽑은 기업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추가적인 조사를 해보니 하나은행이 충청권에 소재한 대학과 각종 공익기관이나 복지기관, 문화예술단체 등에 많은 기부해온 사실도 알게 됐다. 그리고는 기부 액수와 지속성, 대상 기관의 다양함에 다시금 놀랐던 적이 있다.

기업의 진정한 존재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향토기업은 무엇일까? 아마도 양질의 상품을 생산해 이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그로 인한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 이러한 일들을 수행할 직원을 채용해 고용 기회를 확대하는 것, 그리고 이들 모두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업의 존재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지역기업에 대입해보면 지역민을 고용해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고, 그 이윤을 지역민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향토기업의 기준이 될 것이다.

비록 이름은 사라졌을지라도 충청은행이 출범할 때의 마음가짐, 즉 금융을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지역민과 지역 발전의 동맥 역할을 하겠다는 그 자세를 잊지 않고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왔다면, 그 조직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아니, 진정으로 이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더 큰 존재로서의 향토기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말로만 지역기업임을 내세워 이 모양 저 모양의 온갖 혜택을 보면서도 지역 기여에 극히 인색한 몇몇 기업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더더욱 그렇다.

진정한 향토기업은 지역에 감사하기에, 지역민을 사랑하기에 이들을 취직시키고, 이익 공유로 베푼다. 경제적으로 참으로 열악한 우리 지역이기에 충청인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향토기업들이 더 많이 배출돼 지역과 기업이 공히 상생, 발전하는 모습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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