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참다운 흔적 남기기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참다운 흔적 남기기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7-3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번갯불이 어둠을 유령처럼 들추고, 요란한 천둥이 밤을 깨운다. 깜짝깜짝 놀라며 뜬 눈으로 지새는 밤이다. 자연의 괴력에 수없이 놀라며, 무기력하기만 한 자신을 반추해 본다. 우주 역사에 비추어 인생은 한낱 먼지만도 못하다. 그럼에도 사람은 유의미한 흔적을 남기고 싶어 안달이다. 고운 향기라면 모를까 상처로 남아 무엇 하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은 후손에게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그저 왔다 가는 것, 쓰레기만 남기고 떠나서야 되겠는가? 뿐인가,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끈질긴 욕구에 충만 되어 있다. 추태 아닐까? 소설가 모파상의 묘비명이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 했다.'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종종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인생은 속도나 양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 아닐까?

굳이 정해놓은 바가 없는 것을 포함하여 누구나 나름의 철학과 소신, 지향점이 있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선승이 화두로 선에 드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무념도 하나의 의도이다. 생각 없이 창작 할 수야 없는 일이요, 생각 없는 생이 있겠는가?

한국도로공사가 경부고속도로 준공 50주년 기념비를 추풍령휴게소 내에 세우고 지난 6월 30일 제막식을 가졌다. 기념비를 자신이 세웠다고 해서인지 명패석에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도 새겨 넣은 모양이다. 정작 고속도로를 기획하고 건설을 주도한 사람 이름은 빠져있다 논란이 일었다. 이어 반복적으로 장관이름이 훼손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건설당시 건설 주체가 건설부였기 때문에 기념비 건립 주체가 현 국토교통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해명이다. 문제 삼는 측은 건설에 기여 한바가 전혀 없는 사람 이름을 새긴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인사유명((人死留名)을 돌아보게 된다. 여행을 하다보면 명승지 암벽에 새겨진 수도 없는 이름을 접하게 된다. 새긴 본인은 뿌듯할지 모르나, 누가 거들떠 보기나 하는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특정시기에 그 자리에 있어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야 어찌 할까 만은 인위적으로 자신을 기념하는 일은 낯부끄럽지 아니 한가? 쌓은 공덕은 후대 사람이 기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기를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 스스로 자신을 칭송하는 기념비를 세우니 소가 웃을 일 아닌가? 스스로 새기는 이름이 부끄럽지 아니한가? 허명을 새기려 애쓰기보다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것이 우선 아닐까?



생육신(生六臣)은 수양대군이 조선 제6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평생 벼슬하지 않고 절의를 지킨 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을 말한다. 그 중에 김시습(金時習, 1435 ~ 1493)의 생활 단면을 살피고자 한다.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아버지 김일성(金日省)과 어머니 울진 선사 장씨(仙?張氏)사이에서 태어나, 3살 때부터 외조부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5세 때 이미 한시를 지어 신동으로 소문난다. 당시 국왕인 세종이 알고 그를 불러 시험해 보고 큰 재목이 될 것을 알고 열심히 공부하라하며 선물 까지 내렸다 한다. 비단 50필을 선사하고 혼자 힘으로 가져가라 하니, 김시습은 문무백관이 보는 앞에서 비단 끝을 하나하나 묶어 끌고 갔다 한다. 이로 인하여 '5세'라는 별호를 얻게 되는데 부여 외산면 무량사 부도군에 있는 그의 부도비에도 '오세김시습지묘'라 새겨 놓았다.

1455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하였다. 보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스스로 머리를 깎았다. 이후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단종복위운동으로 죽은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 길가 남쪽 언덕에 묻어주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연려실기술≫

절의 뿐 아니다. 애민정신도 대단했으며, 유랑 중 만나는 모든 대상을 절절한 사랑으로 대했다. 그를 모두 시로 남겼다. 자신의 모든 것을 시로 남긴 유일무이한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장으로 경국에 이바지 한 것이다.

2200여수에 달하는 한시를 비롯 수많은 저술을 남긴다. ≪금오신화≫와 몇 편의 한시는 읽었으나 그의 학문세계나 문학세계를 논하기에는 견식이 너무 일천하다. 다만, 부분으로도 성리학과 불교 등 학식이 대단히 깊고 넓음을 느끼게 한다. 높고 오묘하다.

진솔하고 뜨거운 사랑 덕에 수많은 후대인이 그를 기린다. 곳곳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전국 경향각지를 여행하다보면 수시로 그를 만날 수 있다. 부여 외산 무량사를 비롯 노원구 중계동, 청주 상당산성, 강원도 인제군 북면 백담사, 경기도 양평 용문산 시비공원, 보령 개화공원, 문경새재, 강릉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 팔공산, 전남 광양 다압면 도사리 청매실농원 등에 시비가 있다. 시비 뿐 아니다. 관련 일화들이 여기저기 나타나 나그네를 맞이한다. 저마다 기쁜 마음으로 일으켜, 죽은 김시습이 살아나는 것이다.

시 한 수 감상하자. 김시습기념관에 새긴 '매월당 유필시'다. "바랑 하나에 생애를 걸고 / 인연 따라 세상을 살아가오 / 삿갓은 오직 하늘의 눈으로 무겁고 / 신발은 초나라 땅의 꽃으로 향기롭소 / 이 산 어디에나 절이 있을 터이니 / 어디인들 내 집이 아니겠느냐 / 다른 해 선실을 찾을 때에 / 어찌 참선의 길이 험하다고 탓하겠느냐 (一鉢卽生涯 隨緣度歲華 笠重吳天雪 鞋香楚地花 是山皆有寺 何處不爲家 他年訪禪室 寧禪路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1.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2.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3. 백석대·백석문화대, '2024 백석 사랑 나눔 대축제' 개최
  4. 남서울대 ㈜티엔에이치텍, '2024년 창업 인큐베이팅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
  5. 한기대 생협, 전국 대학생 131명에 '간식 꾸러미' 제공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