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낙준 주교. |
요즈음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를 기성세대의 시각으로만 판단할 때 '제멋대로 판단하는 기성복 입은 사람'이라고 하며 외면받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젊은이와 잘 통하는 기성세대이고자 하면서 젊은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판단을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면 젊은이와의 소통이 어려운 사람입니다.
자기 경험을 소중히 하면서 다른 사람의 경험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대개 기성세대의 낡은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젊은이와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긴 시간 만난 사람일수록 서로에게 판단의 근거를 긴 시간만큼이나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긴 문장의 첫 단어의 표현으로도 상대에 관한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긴 문장 전체를 듣지 않고 생략한 채로 해석을 내리다 보니 오해를 자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만난 사람보다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더 자신의 속을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만난 사람에게서 제대로 된 판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판단을 받기 위해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더 속을 펼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만났다는 근거가 제멋대로 판단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랫동안 만났다는 것이 제대로 판단을 하기에는 좋을 수 있지만 제멋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는 제대로 판단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하는 데 있습니다.
제멋대로 판단하면 상대방의 생명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어서 제멋대로 판단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놓치지 않고 살기를 원한다면 제멋대로 판단하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생명을 귀히 여기는 자리에 인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으로 인간은 어디에 있든지 서로 연결된 존재입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제멋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은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기에 안전하고,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 중간에 말을 자르지 않기에 안전하고, 우리에게 위압감을 주면서 듣지 아니하기에 안전하기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최근 2020년 6월 29일에 의원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제3조(금지대상 차별의 범위) ① 이 법에서 차별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또는 경우를 말합니다.
제 1호안의 내용이 아래와 같습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이하 성별 등이라 한다)을 이유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많은 실수와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가운데 역사는 생명을 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힘 있다고 우기고 돈 많다고 제멋대로 한 그동안의 시간과 같이한 아픔들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생명을 살리는 데는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멋대로 판단하지 않고 제대로 판단하여 생명을 살리는 한반도이기를 기대합니다.
/유낙준 대한성공회 관구장·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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