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전 언니가 지인 A의 장래희망을 들려줬을 때, 그가 당시 고등학생이었기에 나는 좀 놀랐다. 장래희망의 이유는 돈을 쉽게 벌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랐다. 적당한 예의와 싹싹함을 갖추고 잘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던 그는 어디서든 형이나 누나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아마도 그렇게 알게 된 사람 중 누군가 룸살롱에서 번 돈을 쉽게 쓰는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금전적으로 여유를 부릴 줄 모르는 친족들의 직업과 비교했을 때, 룸살롱 사장은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룸살롱의 근로조건과 복리후생, 사장의 삶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 뉴스에서 등장하는 룸살롱은 화려하지만 위험해 보였다. 지인인 그가 룸살롱 사장이 된다면 상상하는 대로 하룻밤에 수백만 원 펑펑 쓸 만큼 돈을 잘 벌기를 응원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영화처럼 누군가 그에게 술병을 던지거나 범죄에 연루되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그 말을 듣기 몇 년 전, 중학생이었던 나는 친구와 쓰던 교환일기에 야쿠르트 아줌마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네 아이들은 다 훌륭하게 자라잖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 다니고.' 당시 나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고, 살던 동네를 관할하던 야쿠르트 아줌마는 자상한 분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녀를 잘 키운 훌륭한 사람' 유형의 언론보도는 지금만큼이나 단순했던 그때의 나를 매료시켰다.
세상에 가난이 존재하는 건 누군가 그 몫의 부를 빼앗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던 나는 부자에 대해 반감이 있었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그 환경을 견디는 만큼 인성이 바를 거라고 판단했다. 본가에는 '가난은 행복이다'라고 적힌 목공예 작품이 있다. 20대였던 아버지가 나무를 다듬고 글자를 적어 넣으면서 어떤 다짐을 했을지, 나는 몇 천원을 두고 고민할 때가 많은 요즘에서야 생각해 본다. 룸살롱에서 번 돈을 다정하게 쓰는 사람을 만나고 친하게 지냈다면, 나 역시 지인과 비슷한 장래희망을 꿈꿨을지 모르겠다.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적성을 잘 살리고 싶어서 꿈꿔야 하는 장래희망을 돈이 주무를 때가 많다. '형편껏 꿈꿀게'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읽은 게 지난달의 일이다.
꿈을 꿔 본다. 내가 상상했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아이들과 내가 모르는 룸살롱 사장의 아이들이 꿈을 이루는데 형편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를. 누구의 직업도 가난하거나 위험하지 않고, 편견의 대상이 되지도 않기를.
형편에 맞는 꿈만 이룰 수 있는 세상은 너무 형편없지 않은가.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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