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용 한의사 |
"자 이제 오 분 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제 나가서 맛 좀 볼까요? 그 맛이 나옵니까~아?", "어떻게 그 냉장고 속의 재료로 이런 고급스러운 요리가 나오죠", "오늘 대결의 승자는 중화 요리의 대가 누구누구를 꺾은 웹툰 작가 아무개였습니다"
코로나 19로 힘든 요즘 농어촌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요리 프로에서 창고에서 쌓여만 있던 완도 다시마 2000톤을 라면 회사 회장님께 전화 한 통으로 수매하게 해 다시마가 하나 더 첨가된 한정판 라면을 만들어 수산 농가의 걱정거릴 덜어 주는 것도 보인다. 여기도 한 명의 남자 스승과 세 명의 남자 제자가 요리를 개발하고 직접 하는 콘셉트다. 언제부터인가 방송에서 많이 나오는 요리 프로들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 많이 듣던 말이 "사내가 부엌에 자주 들어오면 고추 떼인다", "음식에 관계된 건 여자들이 하는 거고 남자들은 해준 것만 먹으면 돼" 라고 듣고 자라온 나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라면만 끓였지 전혀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보통 아침 주부 시간대에 요리연구가 어떤 아주머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깔끔하게 요리하는 방송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방송에서 남자 요리장들이 나와서 방송을 하기 시작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요리를 잘하는 남자 연예인들이 한국의 산골짜기나 섬, 외국까지 나가 요리를 한다. 남자들이 요리를 더 잘 하는 것인지 요리를 잘 못 한다고 생각한 남자들이 나와서 맛있는 요리를 해서 재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많은 방송에서 요리하고 있고 그 대부분이 남자들이다.
결혼 초에도 음식은 여자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아이들이 크면서 캠핑을 가게 됐고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는데 캠핑장에서는 남자가 요리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는 소리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여러 번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집에서도 스테이크를 구울 때도 당연히 내가 하고 있고, 요리 경연 프로를 보고 난 다음 꼬마들이 그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고 하면 레시피를 흉내 내서 요리를 하게 됐다. 요즘은 어느 식당에서 맛있게 먹은 통삼겹살 찜에 꼽혀서 네이버랑 유튜브를 뒤져 보며 레시피를 참고해 두 번 해 봤다. 단 짠 한 맛은 거의 비슷하게 맞춘 거 같고 살살 녹는 것 같은 식감은 한 번 더 해보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해진다.
한의학에서는 약식 동원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이 같다는 말인데 나한테는 원뜻과는 별개로 요리를 하면서 음식이나 한약 재료 자체의 물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파나 양파를 먼저 볶고 고기를 넣거나, 고기랑 같이 볶을 때의 차이점. 양념할 때 설탕을 먼저하고 간장을 넣을지, 반대로 하면 왜 맛이 겉도는지나, 채소를 살짝 익히거나, 아니면 아예 태웠을 때 단맛이 더 난다는 점 등.
한약재를 달일 때 어떤 약재는 다른 약 달이기 전 30분 전에 달여야 되는 것도 있고, 볶아서 약간 태워서 쓰는 것, 생강즙에 미리 재워서 말려 쓰는 약재, 한번 끓여서 독성을 좀 줄이고 써야 하는 약재 등.
한약을 계속 달이다 보면 이 약은 몸에 어떻게 좋을 거 같다거나, 이런 향과 기운으로 몸의 어느 부분이 좋아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음식을 하다 보니 식재료들을 볶거나 삶거나 졸이다 보면 어떤 맛이 날지 어떤 맛이 부족할지 알 것 같다.
뭐 아주 음식을 많이 하신 분들이 본다면 웃기는 나 혼자만의 자화자찬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20년 이상 한약을 달여본 경험으로 하는 말이다.
다음에 할 삼겹살찜에는 파인애플을 소스에 갈아 넣어 육질을 더 부드럽게 하고 파인애플의 단백질 분해 효소로 소화를 더 잘 되게 해야겠다./박승용 아이누리한의원 세종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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