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정명희 미술관에서 만난 김병진 작가. WWⅡ 추상 연작은 세계2차대전과 인간학살 등을 주제로 한다. |
대전 출신으로 묵묵히 수묵의 길을 걷고 있는 김병진 작가가 오는 31일까지 정명희미술관에서 정예작가 초대전을 이어가고 있다. 김병진 작가는 수묵 동양화를 기본으로 풍경, 정물, 추상 세 장르를 모두 그린다. 이번 정예작가 초대전에서는 '2차 세계대전(World WarⅡ)'을 주제로 하는 추상 연작 18점 선보인다.
김병진 작가는 "그림의 주제는 2차 세계대전과 인간학살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살고자 몸부림치는 모습,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손톱으로 벽을 긁어내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자기를 너무 비관하면 죽고, 스스로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면 삶의 충동을 느끼는 것처럼 그림을 통해 인간성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묵 작업에 지문을 하나하나 찍어낸 연작 시리즈는 세계를 강타한 최악의 바이러스 코로나19와도 연결고리가 있다.
김 작가는 "브라질이나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망자들을 해변이나 섬에 묻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유럽 수용소에서는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켜켜이 쌓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봤다. 이 작품은 사각 틀에 일일이 지문을 찍는 작업으로 진했는데 지문 하나하나가 개인의 모습, 매장된 사람을 연상케 한다. 기록과 자료를 통해 현시대의 현상을 통해 나는 이미지텔링을 쌓아가고 있다"고 세계관을 설명했다.
작가의 작품은 손을 붓 대신 활용한 점이 특징이다. 수용소 사람들처럼 발버둥 치듯 캔버스를 긁어내기도 하고, 열 맞춰 찍힌 손의 이미지만으로 삶에 대한 열망 혹은 의지를 꿈틀거리게 한다.
김 작가는 "아픈 기억이나 왜 무서운 주제로 그리느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려면 아픈 것을 되돌아보고 나서야 평화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더 무섭게, 더욱 어둡게 그리고 싶다. 이 그림들을 통해서 평화를 서로를 존중해야 함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프랑스 유태인 박물관에서 희생자들 이름이 쓰인 하얀 대리석 비석을 본 적이 있다. 그 이후 숫자를 차용해 그림에 표현했다. 숫자는 세계 공통기호로 이질감이 없고, 각자의 해석이 가능하고, 시간적 의미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진 작가가 정명희미술관에서 정예 작가로 초대전을 갖게 된 것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작가는 "대학교 4학년 때 수묵화를 그리다 먹을 잘 못 찍는 실수를 해 그림을 해결하지 못한 적이 있다. 당시 담당 교수셨던 기산 정명희 선생님은 실수한 부분에 어울리게 그림을 수정하면 된다며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실수를 실수가 아닌 것으로 바꾸는 작가의 기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양화에서 가장 중요한 비움 혹은 여백에 대한 깨달음, 나만의 세계를 찾으라는 기산 선생님의 조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효한 가르침"이라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WW2_Holocaust Auschwitz. 100+70㎝㎝ lnk and paper on canvas 2017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