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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돼도 식탐은 여전했다. 나의 관심은 늘 위장에 집중되어 있다. 뭘 먹을까, 뭐 맛있는 거 없나? 9년 전쯤이다. 당시 안희정 충남지사가 여기자들을 대흥동 도지사 관사에 초대했다. 지금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충실하고 있지만 그때 안희정은 '연예인 오빠'였다. 대권을 바라보는 차밍한 정치인이었으니까 말이다. 5월의 어느 날 도지사 관사는 여기자들로 성황을 이뤘다. 나는 아름드리 나무가 무성한 고색창연한 도지사 관사가 더 궁금했다. 점심은 눈부신 햇살 아래 야외 뷔페로 차려져 있었다. 와우! 여기자들은 잘생기고 말빨 좋은 도지사에게 넋이 빠져 아이 컨택 하기 바빴다. 나는 진한 버섯 수프와 온갖 샐러드, 부드럽고 고소한 빵에 홀딱 반해 접시 나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네 접시밖에 못 먹었다. 옷을 딱 붙게 입어 부른 배를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하면 집 옆 공원에서 운동한다. 100m를 15초에 달리는 날쌘돌이에 비하면 어림없지만 한 시간 정도 빠르게 걷는다. 요즘 같은 저녁에는 동네 사람과 개들이 다 모여든다. 평상에 앉아 부채 부치며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냄새 맡는 귀여운 강아지들, 운동기구와 씨름하는 중·노년의 남녀들. 재미난 건 젊으나 늙으나 살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는 거다. "아이구, 난 4키로나 쪘어. 언제 뺀댜.", "난 어제 저녁 삼겹살 먹고 잤더니 2키로가 늘었지 뭐야."
예전엔 후덕한 몸집이 미덕이었다. 못 먹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노인들도 몸에 관심이 많다. 매일 사우나에 들락거리면서 체중계에 올라 눈금을 확인하는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열나게 땀 빼고 갈증난다며 달디 단 박카스 하나씩 쭈욱 들이켜며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여인들의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다.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 청바지에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배우 윤여정을 보며 나도 저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이 일흔에 청바지라니, 시크하고 멋졌다. 영화 '돈의 맛' 베드신에서 보인 배는 어떻고. 맙소사! 뱃살이 하나도 없으면서 팽팽했다. 60 중반에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충격적이었다.
사실 나이 들면서 뱃살이 꿀렁거리는 배둘레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허릿살이 비어져 나오고 배가 두둑해지는 몸의 형태는 자연의 섭리란 말씀이다. 그렇지만 이런 몸을 원하지 않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고백하건대, 내가 운동하는 진짜 이유는 밥을 많이, 맛있게 먹기 위해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룡산 정상에 올라 계란말이에 오이소박이로 도시락 먹는 그 맛을 뭣에 비할까. 땀띠나게 걸은 후 우유에 바나나 두세개 넣어 갈아마시고 참치김치찌개 끓여 밥 한 공기 뚝딱. 그리고 수박 한 대접. 이놈의 식욕은 줄어들 줄 모른다. 마르타 힐러스는 『함락된 도시의 여자』에서 "모든 생각, 느낌, 소망, 기대가 먹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엊그제 지인이 부산어묵을 택배로 보냈다. 한 여름의 저녁, 매콤한 청양고추를 넣고 어묵국 한 냄비 끓여 밥과 함께 먹었다. 배둘레햄? 올테면 오라지.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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