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한여름 복숭아를 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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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한여름 복숭아를 자르며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승인 2020-07-21 19:47
  • 신문게재 2020-07-22 19면
  • 신가람 기자신가람 기자
임숙빈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코로나 사태로 인해 졸업식도 입학식도 하지 못한 채 비대면 수업으로 한 학기를 끝내게 된 안타까움은 둘째 치더라도 실습이 매우 중요한 간호학과에서 실습을 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였다.

궁여지책으로 온라인 실습으로 대체하는 경우들도 많았지만 현장 감각을 늘리려면 실무현장에 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행히 대전에서는 확진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는 시기가 있어 이리저리 일정을 조정해가며 병원 실습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어느 새 여름 한 가운데에 와있다.

바로 또 이학기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잠시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랜만에 동네 마켓에 들렀다. 바이러스가 어떤 난리를 치던 여름 과일들은 제 나름대로 탐스러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중 복숭아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요즈음 음료나 차, 과자 등 복숭아를 재료로 넣은 상품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아마 복숭아가 달콤한데다가 향도 좋으니까 많이 이용하는 가 보다. 필자가 좋아하는 딱딱한 복숭아가 있기에 몇 개 사왔다. 볼그스레하면서 뽀얀 자태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며 복숭아를 씻어 자르려는데 오래전 감동받았던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였다. 십여년도 더 지난 기억인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던 신영복 교수의 정년퇴임 강의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그의 정년퇴임 강의를 공개로 개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 자리에서 신교수께서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주제로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법을 강의했다고 하였다. 아, 미리 알았더라면 강의를 들으러 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쉬웠다. 가지에 남은 마지막 과실, 석과(碩果)를 먹지 않는 뜻은 다음 세대에 다시 돋아나는 새싹에 대한 기대이고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희망을 의미하리라. 그런데 필자에게는 "먹지 않는다" 보다 "먹히지 않는다."는 해석이 더 도드라져서 마음에 꽂혔다.



복숭아를 자르다보면 어째도 가운데 씨가 있는 부분에는 칼이 들어가지 않아 돌려가며 과육만 자르게 된다. 그러니 이리 저리 과육은 다 먹어도 결코 먹어버릴 수 없는 것, 그것은 씨, 또 다른 복숭아 나무를 키울 씨앗이 아닌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라고도 할 수 있고,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할 희망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것이 복숭아를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는 누군가의 말이라고 친다면, 복숭아 입장에서는 먹히지 않아야 다음 세대로 이어갈 수 있는 생존의 이야기가 된다.

코로나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그래도 우리나라는 통제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빠르고 체계적인 관리 속에 국민들의 협조까지 더해져 자랑스러운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품고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다. 코로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우리는 세계 속에서 훌쩍 높아져버린 위상을 느끼게 되었다. '빨리 빨리'하는 한국인들의 특성을 조금쯤은 놀리듯이 대하던 나라들도 우리의 신속성에 찬사를 보내며 배우기를 청한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 역시 벅찬 경쟁 속에서 헬조선을 외치며 스스로 비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우리 저력을 알게 되었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절대적으로 나쁜 것만은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도 매일 들이닥치는 뉴스를 접하다보면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다는 듯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말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기를 예사로 하니 말이다. 큰 나라들의 다툼 속에서 먹히지 않으려면 우리의 씨를 어떻게 더 크고 단단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안의 씨는 무엇일까? 석·과·불·식. 신가람 기자 shin9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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