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주인아저씨가 일을 하다가 과수원 울타리 옆에서 돌미나리를 채취하고 있는 할머니께 그걸 뜯으면 안 된다고 하니 대꾸 반응으로 나온 말이었다.
"왜 돌미나리를 뜯으면 안 된다는 게요?"
"과수원에 독한 농약을 엊그제까지 여러 번 했는데 거기는 과수원 턱밑이라 농약이 많이 묻었을 겁니다. 그래 그 돌미나리를 잡수시면 위험합니다."
돌미나리는 과수원에서 살포하는 농약 덕분인지 무성하게 자란 것이 욕심이 날 정도 탐스럽고 싱싱해 보였다.
할머니는 과수원 주인이 하는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돌미나리를 열심히 뜯고 있었다.
당신네 집에서 잡수실 것이 아니라는 말로 보아, 아마도 유성장날이나 아니면, 늘 하던 것처럼 거리에서 전을 벌이고 팔 욕심으로 무심코 나온 이야기 같았다.
이 할머니는 유성 장대동 사시는데 보기에는 촌티가 나고 어수룩해 보이셨다.
할머니는 지명(知命)의 나이에 미망인이 돼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사신 분이셨다.
자식이 있을 법도 했지만 자식 얘기가 나오면 왠지 낯빛을 고쳐가며 다른 말로 피하는 걸로 보아 수상쩍은 면도 좀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미망인이 된 후 10년 정도는 유성 장대동 조그만 밭뙈기에 농사짓는 재미로 사셨다. 또 거기서 생산된 야채며 검정콩이랑 마늘이랑 조, 오이, 호박, 가지 같은 것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셨다.
가엾은 할머니의 사정을 아는 인근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데로 가지 않고 할머니 농산물을 팔아 주었다. 가엽기도 하지만 워낙 순박한 할머니여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파시는 야채와 나물이랑 검정콩이랑 마늘은 일찍 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 인기였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는 것도 같았다.
순박해서 거짓말을 못할 것 같은 어수룩한 할머니가 손수 농사지은 무공해 농산물이라는 말에 더욱 믿음이 갔으리라.
물론 직접 농사지은 거란 말로 입소문을 낸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웰빙식품을 선호하는 요즈음 사람들이라 무공해로 직접 농사지은 국내산 곡식에다 야채라니까 갖다놓기가 무서울 정도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거기다 외모로 풍기는 촌티에 어수룩해 보이는 모습까지 가세하여 더욱 믿음이 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촌티 나는 할머니의 소탈한 모습과 순박해 보이는 얼굴 모습은 아무라도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거기다 신토불이 농산물이란 입소문까지 나돌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꼬박 곧이듣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지 할머니는 제법 적잖은 단골손님까지 확보가 되어 장사가 제법 잘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고생한 지 10년째부터는 제법 짭짤한 수입으로 돈푼께나 모으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하루하루 돈 버는 재미에다가 돈맛까지 알아가는 깍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돈맛을 알게 된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는 원래의 순수 모습이 퇴색돼 가고 있는 것이었다.
돈맛을 알아서인지, 매력을 끌게 했던 촌티와 어수룩해 보이던 그 순수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이런 변화 속에 할머니가 거짓말까지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 같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세속에 물드는 것이 할머니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안타까웠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선하고 정직하게만 살아서는 각박한 세상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할머니는 언제부터인지 터득한 게 틀림없었다. 떳떳하지 못한 것과 위선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보니 할머니한테도 근묵자흑(近墨者黑)의 동화가 의심의 여지없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세월의 어두운 그림자 무게에 휘둘리는 인간의 무력함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이건 우리 먹을 게 아닌 데요."
언제 이렇게, 나와 가족만을 행기고 위하는, 매정하고 냉냉한 기계가 됐단 말인가!
나와 내 가족만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그걸 먹고 어떻게 돼도 상관없단 말인가!
노파는 돈맛을 알게 된 후 그 순수와 따뜻했던 가슴마저 얼음장이 돼 가고 있었다.
돈 맛들인 주머니가 불룩해진 뒤에는 할머니는 사람들한테서 받던, 그 소중한 신뢰가 어디론가 다른 데로 옮겨가는 느낌이었다.
아니, 할머니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온혈 가슴도, 연민의 정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불티나게 팔리던 마늘이랑 검정콩도 어느 날부터인지 찬밥 신세가 돼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편리요, 기계화된 세상이라지만 사람의 가슴까지 기계가 돼서는 쓰겠는가!
이제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신뢰도 잃고, 돈도 잃고, 따듯한 가슴의, 모든 사람들까지 잃게 되었다.
신뢰하는 맘으로 무조건 사주던 검정콩, 머위, 마늘도 사가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부자가 돼가던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잃고, 거지가 돼가도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게 바로 할머니가 뿌린 씨를 열매로 거두는 부메랑이 아니겠는가!
불신의 씨앗을 뿌렸으니 거두는 것이 인정으로 사랑으로 거둘 수 있는 열매가 열릴 수 있겠는가!
장날 검정고무신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나온 검정콩 한 되, 마늘 한 접을 머리에 이고 나와 팔며 흘리던 촌 아낙의 미소가, 마음 한 구석이, 왜 이리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아니, 속이지 않고 살던, 그 아낙의 마늘 한 접, 콩 한 됫박을 믿고 사 주었던, 영화 속의 장면 같았던 향수 어렸던 추억이 왜 이리 마음을 파고드는지 모르겠다.
"이건 우리 먹을 게 아닌 데요."
새겨볼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요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었다.
제발 할머니가 어수룩하게 살던 그 가슴으로 새로운 부메랑을 만들게 하소서.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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