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현 서기관 |
어린 시절 이 우화를 읽으면서 나도 무조건 개미의 근면함을 닮아야 한다고만 여겼다.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개미를 보면서 게으름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베짱이는 너무 억울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혐오와 차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건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서 보듯 '다름과 틀림', '차이와 차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인한 헌법 개정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이다. 우리가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됐을 뿐 아니라, 정치란 국민의 뜻을 따라 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2020년을 사는 현재 1987년처럼 우리나라를 한 단계 도약하게 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 있다. 그건 바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다.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정한 차별 금지를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법규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도입하면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다루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 사유로부터 피해 입는 개인과 집단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차별금지법' 등 개별적 차별금지법들이 존재하지만, 차별 금지 사유별로 개별법을 향후 계속 만들어내는 건 적절하지 않다.
올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차별에 대한 국민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8명(88%)이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힘입어 지난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됐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할 것을 권고하면서부터 추진했지만, 제정 당시 경영계는 '기업 현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심화시켜 국가 경쟁력이 후퇴할 것'이라 했고, 일부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동성애 반대를 이유로 법 제정을 반대했다. 이후 14년 동안 일곱 번이나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자동 폐기되거나 일부 세력의 반대로 폐기됐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는 차별과 혐오가 퍼졌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사회적 소수자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하지 않는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더욱 확산됐고, 이로 인한 차별 구조화와 사회갈등이 심화됐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사회가 더욱 안전한 시스템을 확보해 일상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평등사회로 가게 하는 것이고, 한 사회가 소수자 대하는 태도의 마지노선을 긋는 것이다.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최저기준의 사회적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차별을 당하는 집단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규범적인 면이 더 큰 법이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와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명시될 차별 금지 사유들이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빠질 수 없으며 빠져서도 안 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필수적인 과제다. 2020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통과되기를 희망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문은현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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