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는 孔(구멍 공), 子(스승 자), 穿(뚫을 천), 珠(구슬 주)로 구성되어 있다, 출전은 宋 祖庭事苑(송나라 조정사원)에 기록되어 있다. 이 고사성어는 흔히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이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다.'라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스승으로 추앙(推仰)받는 공자(孔子)가 천하를 주유(周遊 : 이리저리 두루 다님)할 때 채(蔡)나라 국경을 지나다가 뽕을 따는 두 여인을 보았다.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얼굴이 구슬처럼 예뻤고, 서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곰보처럼 얽었다.
공자가 농담(弄談) 하기를 "동지박 서지박(東枝璞 西枝縛 동쪽가지는 구슬박이고, 서쪽가지는 얽은 박)"이로고.
서쪽 여인이 공자를 힐끗 보더니 대꾸하길.
"입술이 바짝 마르고 이빨이 톡 튀어 나온 게 칠일 간 굶은 상인데, 귀가 얼굴색보다 흰걸 보니 문장만은 천하에 알려질 만 하겠군."(乾脣露齒 七日絶糧之相 耳白於面 天下名文之相 건순로치 칠일절량지상 이백어면 천하명문지상)
무안을 당한 공자가 서둘러 길을 떠났는데 채나라 국경에서 반란 수괴로 오인되어 포졸들에게 잡힌다. 천하의 석학(碩學)공자를 몰라보는 포졸이 묘한 숙제를 던졌다.
"당신이 노(魯)나라 성현(聖賢)인 공자(孔子)라면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함이 있을 터인즉, 구멍이 아홉 개 뚫린 구슬을 명주실로 한 번에 꿰어 보라"고 한다.
공자가 명주실을 잡고 구슬을 꿰는데 연 나흘을 끙끙댔지만 실패의 연속이라, 할 수 없이 자신이 무안을 준 뽕을 따던 서지박 여인에게 혹 답변을 듣기위해 제자를 보낸다. 제자가 가보니 여인은 간데없고 짚신만이 거꾸로 뽕나무에 걸려있었던 바, 그 내용을 보고받고 가만히 생각해 보던 공자가 무릎을 탁치며 제자에게 이르되 "계혜촌(繫鞋村) 을 찾아가 보라."라고 한다.
제자가 우여곡절 끝에 계혜촌에서 그 여인을 찾아 구슬 꿰는 가르침을 청하자 여인은 말없이 양피지에 '밀의사(蜜蟻絲)'라는 글자를 적어 준다. '밀의사' 글귀를 받은 공자가 탄복하며 꿀과 실과 개미 한 마리를 잡아오게 하여, 개미 뒷다리에 명주실을 묶어 놓고 구슬 반대편 구멍에 꿀을 발라 뒀더니 하룻밤 사이 개미가 구슬을 다 꿰어 놓았는지라 그 날은 공자가 밥 한 끼 못 먹고 굶은 지 바로 칠 일째 되는 날이었다.
자신의 오만방자(傲慢放恣)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친 공자는 또 다른 의문을 가진다. 왜? 구멍이 다섯도 일곱도 아닌, 아홉 개 뚫린 구슬을 나에게 주었을까? 공자는 7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이치를 깨달았다는데, 인간이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 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두 코로 향내를 감지하고, 입으로는 정갈하게 먹고 진실 되게 말하며, 두 구멍으로는 배설하는데 막힘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 무리 없이 삶을 이어가는 기본이요, 하늘의 도리(道理)가 아닐까 하는, 곧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천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공자는 나이 칠십에 그 이치를 비로소 통달하니, 이후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규범(規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라는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는 것을 알았다.
옛 글에 농사일은 응당 남자 종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응당 여자 종에게 물어보라(耕當問奴 織當問婢경당문노 직당문비)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천하를 꿰뚫어보는 공자도 배우는 일에 있어서는 연령이나 신분의 귀천부귀(貴賤富貴)를 따지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지 다른 조건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배우는 일에 있어서는 꼭 좋은 일만이 배우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나쁜 경계와 반성의 대상이 되는 것도 배움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고 하였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가 보면 그 사람 중 모범이 되는 점은 그의 행실을 좇고, 좋지 못한 점은 그 행실을 살펴서 고쳐야 할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이란 반드시 나보다 좋은 점만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못한 점이 있을 때도 그것을 보고 거울삼아 고친다면 그 또한 스승역할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어떤 일, 어떤 사람에게서든 나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얻어, 내 자신의 수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겨있다.
당(唐)나라 한유(韓愈)는 사설(師說)이란 글에서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도(道)를 들은 것이 앞서면 내 그를 쫓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요, 나보다 뒤에 태어났더라도 도(道)를 들은 것이 나보다 앞서면 또한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니,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기 때문이다. 어찌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나중에 태어난 것을 가지고 스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도를 기준으로 배움의 방향을 정한다면 길 가의 거지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천하의 스승인 공자(孔子)도 이를 지적하여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묻는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일러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하는데 공자께서는 이 말로 제자들과 후세(後世)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때로는 학력이 그 사람의 인격을 좌우하는 척도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현실은 그 사람이 겪은 소중한 경험과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 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학문과 도덕성을 뛰어넘는 참스승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공자천주인 것이다.
요즈음 대한민국을 흔드는 중요한 사건들이 연일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회자(膾炙)되고 있다. 이는 모두 자기만이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자만심 때문이다. 전문가에게 좀 더 배우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행동이 절실 할 때이다.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까워질수록 부정했던 숨겨진 사실이 드러나 국민을 경악케 하고, 심하면 국민의 큰 저항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춘추시대 국어(國語) 주어하편(周語下篇)에 '衆心成城 衆口?金(중심성성 중구삭금) 곧 대중의 마음은 큰 성을 완성할 수 있고, 대중의 입은 무쇠를 녹인다'는 말을 주목해본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나라의 위정자들이 국민을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지….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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