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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선 지음│창비
하늘에 노을이 퍼지기 시작하는 평화로운 오후의 기차역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땡땡땡!" 기차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울리고, 한순간 플랫폼은 여행자들의 설렘, 그리운 이와 재회하는 기쁨, 친애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으로 고조된다. "환영해요." "만나서 기뻐요." "행운을 빌어요." "보고 싶을 거예요." 마음이 담긴 말들이 전해진다. 웅장한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는 곰 기관사, "엄마 언제 와?"라는 아이의 재촉에 부지런히 일하는 얼룩말 회사원,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길에 오른 아빠 고양이와 아이 고양이, 오랜 노력 끝에 손 빠른 매표원이 된 나무늘보 등 이웃처럼 친근한 68종의 승객들이 보인다.
기차의 물성을 살려 병풍(아코디언) 제본으로 묶인 양면 4m 너비의 그림책은 거대하면서도 섬세하다. 증기기관차의 외관은 0.1㎜ 두께의 가는 펜선으로 촘촘하게 묘사됐다. 커버 안쪽에는 캐릭터 소개를 넣어 등장인물을 스쳐 지났더라도 다시 살펴보게 한다. 그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탄생하게 됐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전체 면을 펼치고 감상하면 탁 트인 기차역 풍경을, 한 면씩 꼼꼼하게 보면 작품의 세부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서 읽으면 달리는 기차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여행자들이 오가는 기차역 풍경을 통해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는 삶을 은유하는 이 작품은 스쳐 지나기 쉬운 구석구석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과 익숙한 곳을 떠나는 이들이 받는 순수한 사랑의 인사말은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딛게 하는 용기를 전한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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