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수 |
사회나 조직에서 구성원들 간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유지하는 방법은 무언의 인식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합의되고 있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지만, 인간은 막대한 비용을 사용하지 않거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들을 만들어 서로의 영역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본인만의 영역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과도 같다. 관계자들만의 독립된 공간을 원하며 일에 대한 집중력 또는 편안한 휴식처를 만들려는 욕구를 가지려는 메시지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푯말을 보면 그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하며,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나라의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지정된 책상과 의자를 없애고 있다. 업무 생산성이 올라가고 정보의 소통이 올라간다고 한다. 효율성을 떠나 직원들은 서로를 감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출근하는 것이 괴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칸막이의 높이는 감시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수록 더 높아질 것이다. 차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사무실 공간을 모두 오픈하여 어디든 편하게 공간을 구성할 수 있게 하는 편이 업무 효율성과 만족감이 좋아질 수 있다.
맛집으로 소문 난 식당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생긴다. 놀이공원의 바이킹을 타려는 줄도 주말에는 제법 길다. 불편함과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사람들이 기다리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은 만족감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모든 건물과 음식점에서 적당한 거리를 선호하도록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해' 라든지 '집을 나가면 고생' 이라는 말이 있다. 정신적으로 괴롭거나 신체적 통증이 있을 때 집만큼 편안하고 포근한 곳은 없다. 집이라는 공간이 사회적 합의로부터 부여된 상처를 치유하는 곳일 수도 있지만, 요즘 같은 팬데믹 시기에 '자가격리'라는 말로부터 오는 인간관계의 후퇴는 당사자의 약하고 지친 모습을 스스로 보게 되는 괴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자체에 행복을 느낀다. 냉정할 같아 보이는 스티브 잡스도 죽기 전에 애플사의 성공과 자신의 성취감보다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적당한 거리두기를 원하면서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상처를 치유 받으려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진화과정 동안에 식물에 친근함을 느끼도록 반응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도시에서 자라고 학원에 지친 '식물 부족 증후군'을 앓는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산과 공원을 거닐어보면 좋겠다. 숲 속을 걷는다거나 공원길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인체의 면역세포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꽃다발을 받으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과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행복의 영역을 유지하는 신호를 보내는 사회적 신호전달 개체가 되는 방법과 상대방에게 유익한 신호를 전달하는 '착한 일원'이 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일들은 아니다.
독감바이러스처럼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의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사실은 바이러스와 인간의 합의된 영역이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전지역에서 발생하는 확진자의 동선 공개 문자와 그들을 비난하는 댓글도 매일 보게 된다. 서로의 영역을 유지해야 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들도 나와 같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우리의 일원임을 이해하고 '거리두기', '친근하기'와 '행복 신호'를 서로에게 전달하고 격려하며 웃는 모습을 통해서 비난과 상처를 치유하고 고립감 같은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면 좋겠다.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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