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코로나19와 함께 우리는 벌써 세 번째 계절을 맞고 한 해의 절반이 후딱 지나고 있습니다.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철이 되면 경험이나 과학적 근거도 없이 코로나가 소강상태가 보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전국은 다시 기세등등하게 사실상 2차 유행에 돌입했다는 평가 속에 대전도 매일 확진자가 늘어 그 숫자가 130명을 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학교까지 덮친 코로나 공포 때문에 대전시는 비상방역 체계를 가동하면서 사회적 거리를 두자는 현수막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교차로나 도시의 공원 입구까지 선거철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오락가락하던 장맛비가 그친 뒤 계족산에 올랐습니다.
여느 때와 달리 계곡물이 불어나 어룽거리며 흐르는 물소리가 다정스럽고 새들의 울음소리는 도시의 소음을 뒤로하며 평화로웠지만 그것도 잠시 내 동공을 확장시킨 것은 생경(生硬)한 풍경 때문이었지요. 계족 쉼터와 임도 삼거리에 설치된 운동기구와 벤치마다 사고 현장을 보존하기 위한 저지선처럼 붉은 띠들이 둘러쳐있지만 기어이 몇몇 사람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체 저 사람들의 심사는 무엇일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면서 참 대책 없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불쾌감을 한참동안 지울 수 없었습니다. 후덥지근한 장마철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노릇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하여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여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올 장마는 예년과는 달리 7월 하순까지 2~3일에 걸쳐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다가 폭염이 지속되는 이우삼열(二雨三熱)이라지요.
내려오는 길, 지구가 생긴 이래 여름철이면 해마다 겪어야하는 장마의 어원은 한글일까, 한자어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장마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장마란 어원은 모호하지만 이전에는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오란비'라 하였으며 '오랜'의 한자어인 '長'과 비를 의미하는 '마ㅎ'로 15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長+맣'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은 매실이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라 하여 중국에서는 메이유(梅雨) 일본은 바이우(梅雨)라 부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산스크리트어 사전'에서는 '장(Jhan)'은 'noise of falling rain, rain in large drops'로 '마(ma)'는 '장'을 명사화하는 어미로 이 둘을 합치면 장마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올여름은 코로나가 겹친 장마가 길다고 해서 미리 짜증을 낼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는 폭염 대책에 상충되는 일이라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더위 쉼터나 카페 학교 교회 등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밀폐된 공간은 코로나 감염의 측면에서는 집단 감염이 생길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난 4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1880년 기후관측 이래 금년이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가능성이 74.7%이며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다섯 손가락에 꼽힐 확률은 99.9%라고 예측하였습니다. 벌써 펄펄 끓는 시베리아는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며, 이제 곧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와 함께 일본의 기상학자인 구라시마 아쓰시가 1966년 그의 책 『일본의 기후』에서 처음 사용한 열대야가 찾아오겠지만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1819~1900)은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큼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계절이나 날씨에 변화 또한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한다면 황금소나기의 아들 페르세우스(BC.212~165) 영웅처럼 현명한 여름나기를 해야겠습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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