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윤두서의 자화상으로 만나는 호시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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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윤두서의 자화상으로 만나는 호시우보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6-2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자화상
윤두서의 '자화상'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가장 상세하며 포괄적인 역사기록물로 1997년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을 편년체로 기록한 책으로 1893권 888책에 이른다. 국보 제151호이기도 하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웠다. 1995년 전산화 작업이 완료되어 원문과 번역본을 공개, 쉽게 읽고 아주 편리하게 참고할 수 있게 되어있다.

조선의 제왕 중에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왕은 52년의 영조(英祖, 1694 ~ 1776, 조선 21대 왕)이고, 다음이 46년간 재위한 숙종(肅宗, 1661 ~ 1720, 조선 19대 왕)이다. 영조의 부친이기도 하다. 두 왕이 재위했던 이때는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 당파가 극심하게 대립하던 시기이다. 정도 차가 있을 뿐, 동서고금 사람 사는 곳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 파당이다. 이때의 당쟁은 상대적으로 아주 치열했음을 우리는 익히 안다. 실록에 의하면 당시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국가가 불행해 동인, 서인을 표방한 이래 백 년이 되었는데, 날이 갈수록 고질이 되고 있으니, 한탄스러움을 금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좁고 작은데다 문벌을 숭상해 사람을 등용하는 길이 이미 협소하다. 그런데 한쪽이 진출하면 한쪽은 물러나 나라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또 대부분 막혀 있으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숙종실록》 권 65, 숙종행장)

영조의 '탕평교서'에도 비슷한 진단이 있다. 서로 공격하여 공론이 막히고 서로 반역자라 하니 선악을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시평 같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양분된 난국을 타개하여 장기집권할 수 있었을까? 숙종은 '환국정치', 영조는 '탕평책'으로 정국을 이끌고, 오히려 당쟁을 왕권 강화에 활용했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지혜롭고 과단성 있게 대처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며 왕권을 지켜냈다. 숙종은 재임 기간 중 세 번이나 환국을 단행했다. 남인에서 서인, 서인에서 남인, 다시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국을 교체한 것이다. 영조가 사용한 탕평정치는 상벌을 균등하게 하는 것이었다. 원래 탕평은 편중됨이 없고 당도 만들지 말자는 것 아닌가? 붕당의 폐해를 막고자 고루 등용하고 죄도 함께 물었다. 서원을 붕당의 근원으로 보고 170여 곳을 정리하기도 한다.



환국정치로 사류의 희생이 컸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수많은 인재가 은둔생활로 속세를 등지기도 했다. 윤두서(尹斗緖, 1668 ~ 1715, 화가)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물론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으로 부와 학문, 배경이 아주 튼튼하였다. 요즘 말로 완벽한 금수저 출신이다. 169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벼슬을 포기한다. 학문과 시서화로 일생을 보낸다.

도석인물화가 많지만, 산수, 풍속, 동물, 화조화 등 두루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작품을 살피다 보면, 후대의 새로운 학문과 사상, 문화, 문예 부흥기의 선도적 역할을 해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주의적 태도와 회화관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도 소제의 치밀한 관찰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전한다. 대표작인 '자화상(自畵像)'을 포함 그의 유작들로 성첩한 화첩이 보물 제481호 지정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그의 자화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자화상이다. 나아가 동양인의 자화상 중 최고라 평가하기도 한다. 우선 눈빛이 폐부를 찌르는 듯 강렬하다. 생명체의 눈을 그려 보면 반사 빛을 넣어주어야 생동감이 난다. 그림에는 그것이 없음에도 생기를 발한다. 홍체도 관찰하여 그린 듯하다. 봉황 눈에 눈썹이 치켜 올라가 매서움을 더한다. 누당이 크게 발달하여 나이 든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구레나룻을 비롯한 수염을 방사형으로 그려 힘을 더한다. 자연스레 얼굴을 받쳐 주어 입체감을 준다. 수염 사이로 보이는 굳게 다문 입술은 정심과 신념의 표현 아닐까?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형이다. 강인함을 자신에게 돌리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모습도 보인다. 호시우보(虎視牛步) 느낌도 다가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실시한 엑스선 분석에 의하면 귀도 그려 있었고, 간단한 도포 형상도 있었다 한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이 자화상 아닌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 ~ 1519, 이탈리아 화가)는 고독할 때 영혼이 가장 맑고 깨끗해지며, 혼자일 때 자연을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다. 혼자일 때 비로소 온전히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겉모습을 담게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품이나 마음을 담아야 훌륭한 초상화라 한다. 전신사조(傳神寫照), 정신세계까지 그려 내야 하는 것이다. 초상화 화론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나 보다.

우리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도통 소통이 되지 않는 심각한 수준의 대립국면이다. 타개 방법이 무엇일까? 지금은 국민이 통치하는 국민 주권 시대이다. 선택과 결정 또한 국민이 해야 한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세상을 살피고 신중하게 행동할 일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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