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낙준 주교. |
"모든 참된 예술은 예술 너머에 있는 모든 창조자의 창조자를 가리킵니다"라는 토마스 모어의 예술을 보는 자세를 지니게 합니다.
그림 그 자체를 통해 그림을 만든 이의 마음으로 들어가 그 그림을 그린 이의 마음을 움직이신 창조자를 떠올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림을 보고 그림 속을 보고 또 그 그림 속의 속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그림, 그림과 그림을 만든 이, 그림을 만든이와 그 만든이를 창조하신 창조자를 그림을 보는 한순간에 동시적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한 단면만 바라보고 판단하지 말고 깊이 깊게 보라는 토마스 모어의 예술을 보는 자세는 숙고 없이 얄팍하게 살아 허둥대는 현대인들에게 귀한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가 밀접하게 연결돼서 얄팍한 관계로 돌아가는 세상은 없습니다. 깊은 관계로 사랑을 세우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인간의 탐욕으로 얄팍한 관계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었을 때 코비드19라는 작은 바이러스가 나타났습니다. 한순간에 인류 전체가 흔들린 것입니다.
기존의 방향을 잃고 절제하지 않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우리를 통제 불능의 상태로 끌고 온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자기를 파괴하는 상태에 이르면 사랑하는 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사랑하는 이의 기쁨을 사라지게 한 기쁨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비인간적인 탐욕의 세상에서 인간적인 사랑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라는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뜻을 깊이 새기라는 표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의 출현이 아닐까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눈앞의 세상 너머에 있는 곳까지 바라보며 살라는 것이 창조주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번 계기로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깊게 하는 숙고의 시간으로 맞아들인다면 지각변동의 흔들리는 불안의 시간에 있더라도 우리들의 삶의 방식을 재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를 창조하신 이는 인류가 멸하기를 원하지 않으실 것이고 인류가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빛이 비친 그림을 보면 우리는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욕망이 참빛을 향해 눈을 뜨도록 그림은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속의 세계에서만이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신비의 세계를 맛보아야 살 존재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인생을 다 알지 못하고 삽니다. 우리는 누구나 참으로 부족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신비의 세계의 맛을 보아 세속을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면 창조주께서 '이번에는 어떤 신비의 세계의 맛을 보게 하시려는 것이지?'라는 자세로 어려움을 맞이하면 창조주와 함께 어려움을 요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눈앞에 현란한 것들을 차려놓고 유혹을 항상 하지만 우리는 창조주의 뜻을 따라 눈앞의 세상 너머에 있는 신비의 세상을 바라보아 사탄의 유혹을 넘어섭니다.
특히 더운 여름날에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시길 창조주께서 가장 바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이 모든 것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날이길 바랍니다./유낙준 대한성공회 관구장·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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