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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그리다
정중원 지음│민음사
우리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무엇일까. 책의 첫 문장이 던지는 질문의 답은 '나의 얼굴'이다.
역대 최연소로 19대 국회 의장, 5대 헌법재판소장의 공식 초상화 제작을 의뢰받은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가의 에세이 『얼굴을 그리다』는 스마트폰, 컴퓨터 기술로 사실을 기록하는 '카메라-이미지'가 보편화된 시대에 왜 초상화를 그리는지에 대한 섬세하고 밀도 있는 응답이다.
우리는 거울을 만들고, 초상화를 그리고, 카메라를 발명해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얼굴을 확인하지만 자신의 눈으로는 끝내 볼 수 없다. 아무리 정밀한 카메라조차 '왜곡'을 피할 수 없으므로 '나의 얼굴'은 먼 우주나 깊은 심해처럼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볼 수 없는 것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그 영원한 불가능성이 '나 자신의 불가지성을 적나라하게 상기'시킨다고 말한다. '얼굴'이라는 수수께끼는 그렇게 존재를 성찰하려는 본원적 욕구와 맞닿고, 한평생 삶을 감싸는 모든 타자의 얼굴들과 밀접히 얽히고설키게 한다.
저자는 사실상 '얼굴'이 인간을 이루고, 또 인류가 이룩한 거의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고 강조한다. 윈스턴 처칠 등 역사적 초상과 그것에 뒤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며 얼굴을 향한 인류의 욕망과 초상의 관계를 지적하고, 딥페이크 기술 등 최첨단 초상의 현주소를 살핀다. 인플루언서가 등장하는 광고와 대중매체, 마오쩌둥이나 이승만 초상 같은 공공기념물 등으로 재현되는 수많은 얼굴의 의미도 짚어낸다.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서 체득한 깨달음은 세상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모공 하나하나가 보이고, 솜털 한 가닥 한 가닥이 만져질 것 같은 작품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사진이고 무엇이 그림인지, 어디까지 실재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원본과 복제, 실재와 가상의 위계는 전복되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 나의 존재와 욕망은 오롯이 나의 것인가' 묻는다. 나의 원본이라고 믿고 있던 '자아'라는 것이 타인과 사회가 주입하고 강요하는 가치의 복제본이 아닌지 눈을 뜨고 나면,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과정이야말로 자아와 타자를 이해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첫 발이 될 수 있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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