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나는 2014년 6월 초여름 시골로 거주지를 옮겼다. 도시의 삶을 청산하고 시골로 들어와 펜으로 밭을 매고, 글농사를 지으며 살 요량이었다. 그 당시 땅이 구해지자 내 손으로 한 번 집을 짓고 싶었다. 자연스레 관심이 주변 시골집으로 옮겨갔다. 시골집의 첫인상은 이랬다.
'가난하게 때론 소박하게 살아온 촌부들의 나이만큼이나 늙어버린…'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 초가지붕을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꾼 그 때의 모습이거나, 컬러 강판으로 지붕무늬만 바꾼 집들이었다. 나는 이 분들 집과 조화로우면서도 마을에 역동적인 활기를 불어넣는 그런 집을 짓고 싶었다. 촌스러우면서도 촌티(?)나지 않는….
지금, 집 거실을 움푹 파내고 만든 팔각 정자에 앉아 차 한 잔을 들고 마당 텃밭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도시의 삶을 청산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하면서….
"僞學日益, 爲道日損, 時中"(도덕경 48장과 중용의 한 구절)
친형이 써준 붓글씨가 큼직한 액자에 담겨 거실 벽면에 걸려있다. 풀이하면 '학문은 닦을수록 더해가고, 도는 닦을수록 덜어낸다. 둘 사이의 역동적 균형' 쯤 된다. 도식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도시의 삶이 더 쌓는 일이라면 시골에서는 덜어내는 게 일이다. 욕심도 덜어내고, 생활비(?)도 덜어내야 한다. 삶의 사이즈를 작게 맞춰 입어야 한다. 지금은 고전이 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란 책을 다시 읽고 싶은 아침이다.
슈마허가 지적한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세계 경제의 허울과 그 과정에서 낳은 환경과 인간성 파괴의 결과물이 오늘의 팬데믹과 연결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도시는 경제성장의 모든 양분을 빨아먹고 비대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지도 모르는 옆집 사람에게서 바이러스가 옮지 않을까 걱정하며 살아간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분명 지금과 다른 모습일 거라고 많은 석학들이 예측한다. 나는 그 중 하나가 시골의 재발견이라고 본다. 바이러스 감염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 시골의 쾌적한 공기, 거리두기를 잘 지키는 집 간격(?), 초록이 익어가는 논밭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이즈의 경제 규모를 유지할 때 비로소 쾌적한 자연환경과 공존할 수 있다.'는 슈마허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기 때문이다. 시골은 작은 사이즈의 경제 규모를 실천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 세계는 자국의 식량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가 세계에 퍼져있는 조달공장에서 부품수급의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하지만 코로나사태가 지속된다면 식량수급도 만만치 않은 문제가 될 것이다. 자급자족의 식량공급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넘쳐나는 전자기기의 풍요 속에 배는 쫄쫄 굶는 빈곤을 맞이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도시는 향후 비대면 산업과 AI를 기반으로 한 첨단산업으로 갈 것이 뻔하다. 그러면 노동에서 소외된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나는 시골이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농촌은 인구 고령화로 소멸위기에 있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은퇴를 시작하는 7백만 베이버부머가 시골로 들어와 그들의 빈자리를 채워준다면 분명 농촌은 역동적인 활기를 띨 것이다. 시골은 사람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일들이 너무 많다.
김재석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