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너와 나는 서로의 배터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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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너와 나는 서로의 배터리가 되어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6-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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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도 모를 울적한 마음에 인터넷 내 블로그에 접속하여 자료검색을 해 보았다. 검색 중 옛날 파일 하나가 화면에 떠올랐다. 내 반 문제학생 하나가 사고를 쳐서 고민하고 있을 당시 아내가 보냈던 편지와 쪽지사연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여름이 시작인가 했는데 벌써 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목요일까지만 덥다가 비가 오면 덜 더울 거예요.

세월이 하 빠르니까 이 여름도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거구요.



입맛이 없더라도 몸 생각해서 잘 드셔야, 이 여름을 무사히 잘 보내지요.



요즈음 머리 아픈 일로 무척 힘들고 고민도 많이 해서 보기에도

안타깝고 속이 상했는데, 잘 해결이 되었다니 참으로 다행이어요.

이제 더 이상 속 썩지 말고 마음 편히 하고 살아요.



당신 곁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잖아요.

당신이 건강해야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당신이 내 남편인 것이 행운이며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항상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7월 8일 정오. 사랑하는 당신께 .

당신의 아내 드림.'



'감사

내 곁엔 항상 감사한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당신의 아내 성필모'



편지와 쪽지 사연을 보는 순간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었다. 평생을 두고 후회하던 사연들이 영화 필름처럼 재생되었기 때문이었다.

내 집 갖기까지 31번의 이사, 매번 이삿짐 싸서 이사 다닐 때, 혼자 고생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알량한 고3 담임한답시고 밥만 먹으면 학교로 달아나던 못난이 추억이 나를 가만두질 않았다. 평생 생일 없이 살았던 아내의 모습까지 클로즈업 되어 나타났다. 자신의 생일날은 어머니가 고생하신 날이라며 장모님께 미역국 끓여드리러 친정에 가는 바람에 평생 생일 한 번 없었던, 평생 스승으로 살았던 아내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평생 고생으로 일관한, 아내 시리즈 필름이 더욱 마음을 얼룩지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 다행스러운 것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가끔씩 손을 꼭 잡아주곤 했던 여인이 아내라는 사실이었다.

평생 고생만 시키고 흐뭇한 너털웃음 한 번 못 짓게 한 주제에 변명 같은 소릴 늘어놓다니 나라는 존재도 할 수 없는 철면피에 가까운 동물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자책으로 일관된 생활이지만 그 가운데 아내에 대한 사랑과 신뢰만은 진실이었던 것으로 자위의 감정에 빠져보는 것이다.

나는 이런 아내 덕분에 평생 학생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해서 마음 편한 교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바가지 한 번 긁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해준 아내 덕분에, 난쟁이 소리를 들어가며 살아왔던 못난이인 내가, 모든 교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TJB교육대상과 모범공무원 상까지 받게 되고, 그래도 조금은 제자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존재로 늙어가고 있다.

살아서 잘해 주지 못했던 아내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빌며 감사를 드린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나오는 것은 여기에도 만시지탄의 깨달음이 작용해서였을까?

울적한 기분전환도 할 겸 운동하러 나가다가 경비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가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배터리(건전지) 가 다 소모되어 그 기능을 못하는 것 같았다.

배터리는 우리 생활 다양한 기기에 쓰이고 있다. 이 배터리는 모바일 기기의 동력원이나 전자기기에 쓰이는, 약방의 감초 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배터리는 현대인의 필수불가결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동력원이라 하겠다.

무수하고 다양한 배터리가 있지만 모바일 기기. 전자기기 그 어떤 것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기능이 달라진다. 우리 사람도 어떤 사람과 인연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방향과 모습, 그 삶과 질의 빛깔이 달라진다 하겠다.

나는 둔치라서 그런지 겨우 이제서야 깨달았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세월 속에서도 아내와 내가 삐거덕 소리 내지 않고 살았던 것은 아내는 나의 배터리가 되어 그 역할을 잘해 주었고, 나는 아내의 배터리가 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떠나보낸 뒤에 둔치의 몫인 후회투성이로 살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100점짜리 나의 배터리로 살아, 내가 힘이 나게, 빛이 나게 해 주었는데, 나는 50점주기도 아까운 배터리로 아내를 어렵게만 하였으니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남편으로서, 애들 아빠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낙제 점수에 해당하는 배터리 역할을 하고 살아, 후회로 맥질하고 사는 삶이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아내가 곁에 있었을 때 아내의 배터리 역할을 잘 했더라면 이런 얼룩진 마음은 아니었을 텐데,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한숨만 쉬고 있으니 이 어쩌면 좋단 말인가!

너와 나는 서로의 배터리가 되어!

남편과 아내, 가족과 나, 회사의 사장과 나, 회사원과 나, 국민과 국회의원, 모든 관계의 너와 나는 서로의 배터리가 되어 백두에서 한라까지 가슴 따뜻한 광명 천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니, 밝고 따뜻한 가슴이 맥으로 이어지는 너와 내가, 상생하는 아사달 한마당에서 얼크러져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조그만 배터리 하나가 시간을 알려 주고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고, 가스 불이 켜지게도 하고, 문이 열리게도, 닫히게도 하는 기능!

우리 사람도 마찬 가지다.

외양과 성격이 다르고, 재능과 품성까지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활기를 띠고 사는 삶을 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은, 너와 내가 어떤 배터리로 어떤 에너지원을 공급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너와 나는 서로의 배터리가 되어!

우리는 농부로, 교사로, 정치가로, 과학자로, 사업가로 인간배터리 기능을 다해야겠다.

아니, 각계 각 분야에서 유능한 인재로 끼를 발휘하는 인간 배터리로 살아야겠다.

계제에 우리 한 번 반성을 해 보자.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배터리로 살고 있는가!

너와 난 몇 점짜리 배터리 남편으로, 아내로, 자식으로, 친구로 살아왔는가!

혹시 폐기처분을 앞둔 불량배터리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맥을 짚어 볼 일이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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