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사계절이 있어서 1년에 4번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봄이 되면 입춘이니 우수, 경칩이라는 이름이 붙은 날도 있고 겨울이 되면 동지에 팥죽을 먹어야 건강하다는 이야기도 한 번쯤은 듣게 된다. 이런 날들을 절기라고 하는데, 한 달에 두 번, 15일 간격으로 1년에 24절기가 있다. 24절기는 4계절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1년 중 가장 춥고 밤이 긴 날을 동지라고 하고 이와 반대로 1년 열두 달 중에서 한 여름의 가장 낮이 긴 날은 하지라고 부른다. 이날에는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가장 높이 떠있기 때문에 일사량도 가장 많다. 하지를 비롯한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정해져서 양력 날짜에 맞춘다. 하지는 대개 6월 21~22일이다. 한국, 중국 등은 북반구에 속하기 때문에 하짓날에 낮이 가장 길지만, 호주, 브라질 같이 남반구에 속한 나라들은 반대로 낮이 가장 짧다. 하지는 태양이 지표면과 수직으로 내리 쬐기 때문에 이날 이후로 기온이 점점 올라가 삼복(복날)에 더위의 절정을 맞게 된다. 북극지방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가 지나면 모심기가 늦어지기 때문에 서둘러서 모내기를 해야 했는데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이 시기는 1년 중 가장 바쁠 때이다. 옛날 농촌에서는 하지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며 비가 오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먹기도 하고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거나 밥에 넣어 먹기도 했는데, 쌀농사가 많지 않은 탓에 중요 먹거리였던 감자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또 이 시기의 감자가 가장 맛있고 감자에 열을 내려주는 성분이 있어서 더운 여름철에 건강도 지켜주기 때문이다. 감자에 들어 있는 비타민 C는 열로 가열해도 파괴되지 않고 칼륨도 풍부하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이 제철 음식으로 감자를 챙겨 먹은 이유가 있다. 하지에 먹는 감자는 '하지 감자'라고도 하고 '하짓날은 감자환갑이다'라고 해서 하지가 지나면 감자가 알이 작고 감자 싹이 죽기 때문이란다. 오늘날에도 강원도 지역에서는 하지에 감자전이나 감자떡을 해서 먹고 있다. 하짓날에는 감자와 더불어 마늘도 즐겨 먹었다. 이 무렵의 마늘이 연해서 맛도 좋고 장아찌를 담그기에도 적당했기 때문이다. 마늘 속에 있는 알리신 성분은 더운 여름에 입맛을 돋우고 소화 및 혈액의 순환도 원활하게 한다. 옥수수도 하지 음식으로 빼 놓을 수 없다. 옥수수에는 탄수화물, 섬유질, 비타민A과 천연 항산화 물질이 많이 있어서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데, 이 옥수수는 하지 무렵이 제철이다. 절기를 두어 계절을 구분하고 농사에 이용할 뿐만 아니라 영양이 풍부한 제철 음식을 절기별로 정해서 건강도 챙긴 한국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중국에도 지역마다 하지에 먹는 전통음식이 많이 있다. 특히 '쫑쯔'라고 하는 하지음식이 유명하다. 쫑쯔는 대추, 고기, 채소, 오리알, 땅콩과 찹쌀 등 영양소가 풍부한 재료를 10시간이상 삶아서 하지에 먹는데 이는 무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또 평소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들도 이 날에는 쓴 오이나 고수 같은 담백한 채소를 많이 먹는다. 중국 사람들은 하지에 머리를 깎지 않는 풍습도 있다. 하지에 머리를 깎으면 좋은 기운이 떨어져 나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중국 등 절기를 따라 생활했던 옛 사람들은 낮이 가장 긴 날인 하지에 건강과 체력을 위해 음식과 풍습 등을 지켰다. 현대인들도 성큼 다가온 무더위를 하지 음식으로 이겨내 보면 좋을 것 같다.
심아정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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