狡(교활할 교), 兎(토끼 토), 三(석 삼), 窟(굴 굴)로 구성되었으며, 사기(史記) 맹상군 열전(孟嘗君列傳)에 보인다.
이 말은 앞으로의 환란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세워 놓는 지혜나, 무슨 일이든지 준비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비유할 때 흔히들 사용한다.
제(齊)나라 재상 맹상군(孟嘗君)은 집에다 3천 명이나 되는 식객(食客)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거니와, 그 식객들은 저마다 재주 또는 학식이 뛰어났다고 자부하며, 주인의 눈에 들어 출세해 볼까 하는 자들이었는데 풍환(憑驩)이라는 사람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맹상군이 식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설(薛)나라에 가서 내가 빌려준 돈을 징수해 오겠는가?" 그러자 모두들 가기를 원치 않는데 오직 풍환만이 혼자 나서서 자기가 그 임무를 맡겠다고 청했다.
맹상군은 평소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지원자가 한 사람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 풍환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출발에 즈음하여 풍환이 맹상군에게 물었다. "징수가 끝나면 그 돈으로 무엇을 사 올까요?" 맹상군은 "무엇이든 자네 마음대로 사 오게. 단, 우리 집에 없는 것이어야 하네."
설 나라에 도착한 풍환은 채무자들을 불러 모아 차용증을 하나하나 본 다음 채무자들에게 말했다. "맹상군께서는 여러분의 성심성의를 오로지 고맙게 생각하시고는 나더러 채무를 면제해 주라고 하셨소이다." 그리고는 받은 이자를 일일이 다시 돌려주고, 차용증을 거두어 더미에다 불을 질렀다. 모든 차용증은 삽시간에 재가 되었고, 채무자들은 기뻐 날뛰며 '맹상군 만세!'를 외쳤다. 이윽고 돌아온 풍환에게 맹상군이 물었다. "그대는 나를 위해 뭘 사 왔는가?" 풍환은 "나리의 저택에는 없는 것 없이 다 갖춰져 있으나, 다만 한 가지 의(義)가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걸 사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풍환은 차용증을 모두 불살라 버림으로써 의를 사 왔다고 태연히 말했다. 맹상군은 기가 막히고 화도 났으나, 자기가 한 말이 있으므로 나무랄 수도 없어 속으로만 '이런 미친 놈!'하면서 속상해 했다.
일 년 후, 맹상군은 임금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재상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많던 식객들은 맹상군의 몰락을 보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풍환만은 맹상군 곁을 떠나지 않았고, 맹상군에게 맹상군의 영지인 설(薛) 땅으로 가서 훗날을 도모하라고 권했다.
맹상군은 가산을 정리해 설 땅으로 향했다. 설 땅에 도착한 맹상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지의 백성들이 모두 몰려나와 환영했기 때문이다. 이에 맹상군은 풍환을 보고 "지난번에 그대가 '의(義)'를 샀다고 한 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네." 맹상군이 고마워하며 칭찬하자, 풍환이 말했다. "교활(영리)한 토끼는 굴이 세 개나 있기 때문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주군께서는 아직 하나밖에 준비되지 않았으니 안심할 수 없습니다. 제가 나머지 굴 두 개를 마련해 드리지요."
그런 다음 풍환은 위(魏)나라로 가서 위왕(魏王)을 알현한 자리에서. "맹상군이 제나라 조정에서 쫓겨난 사실을 전하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그 같은 큰 인물을 불러들여 위나라 재상으로 삼으시면 반드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위나라왕 역시 맹상군의 명성은 들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기뻐하며 사신을 보냈다. 그런데 풍환은 사신보다 먼저 제(齊)나라로 돌아와 제나라 왕에게 "위나라가 맹상군을 재상으로 임명하기 위하여 데려가려한다"고 말했다 이 보고를 들은 제나라왕은 "아니, 위왕이 맹상군을 데려다 재상으로 쓰겠다고? 그건 안 되지." 정신이 번쩍 든 제왕은 즉시 사신을 맹상군에게 보내 사과하고 달래었다.
풍환이 맹상군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주군께서는 굴 세 개를 마련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주무십시오."
우리는 위태로울 때를 대비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또한 '천하가 비록 편안하다고 해도 전쟁을 잊고 있으면 반드시 위태롭다. 곧 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수안 망전필위)'의 교훈을 굳게 새기고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며 약10일 후면 대한민국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겪었던 6. 25가 다가온다. 그때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며 고귀한 생명을 명예스럽게 생각하며 조국을 위해 희생되었던가?
그런데 최근 가슴이 무너지는 소식이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진다. 6. 25영웅이며 우리 군(軍)의 자존심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서울 현충원 안장불가! 친일세력 등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이다. 이게 무슨 짓인가?…… 정신 차려야 한다.
한비자(韓非子)는 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천하난사필작어이 천하대사필작어세)라 하였다.
이 조그마한 생각이 군심(軍心)을 조각내고 민심의 이반(離反)을 야기(惹起)시켜 제 2의 6. 25를 자초(自招)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대한민국을 적(敵)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며, 아름다운 강산과 건전한 미풍양속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새삼 교토삼굴(狡免三窟)이란 고사성어의 교훈이 가슴에 강하게 와 닫는다.
장상현/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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