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 승인 2020-06-24 15:13
  • 수정 2021-05-12 15:02
  • 신문게재 2020-06-17 18면
  • 유지은 기자유지은 기자
m
가끔 편집일을 하다 보면 실질적으로 내 일은 아니지만 내 선에서 처리해도 될 정도의 사소한 일이 있을 때가 있다. 기사 중간에 있는 오타라던가, 칼럼의 양이 넘치거나 부족하거나 하는, 해결 방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지만 권한은 없는 그런 일.

사실 이런 상황에서의 대원칙은 해당 취재기자에게 연락을 해 뭐가 됐든 부탁하는 거다. 그렇지만 이 일들이 너무도 사소하고, 동시에 상대의 대답마저 확신할 땐, 그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가끔 그랬다. 기사 내에 있는 오타를 몰래 고치거나, 칼럼의 양을 기술적인 면에서 어떻게든 해결했다. 취재기자는 지금 매우 바쁠 거야, 라는 넘겨짚음 속에 일일이 연락하기 귀찮은 내 마음을 숨긴 채. 취재기자와의 통화나 특별한 언질 없이!

근데 이건 빚이다. 나의 귀찮음이 나와 같은 일을 할 다음 사람의 빚이 되는 거다. 말하자면 이렇다. 칼럼의 양이 맞지 않다는 걸 모르는 취재기자는 계속해서 같은 양의 칼럼을 보낸다. 만약 내 다음 편집자가 나와 비슷하다면 아마 적당한 선에서 일을 해결할 거고, 빚은 더 커진다. 문제는 원칙적인 편집자가 나타났을 때 일어난다. 편집자는 당연하게 칼럼의 양을 줄여달라 요구한다. 하지만 취재기자는 언제나처럼 같은 양을 보냈기에 당황한다. 그 기간은 길면 길수록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 갈등은 일을 자초한 사람이 아닌 애먼 사람이 경험하게 된다. 쌓일 대로 쌓인 빚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탕감된다.



빚은, 빚을 진 주체가 갚는 것이 마땅한 일인 동시에 당연스러운 생리다. 크든 작든, 시간이 오래 걸리든, 그건 빚을 진 주체의 몫이다. 문제는 빚을 낸 주체와 빚을 갚는 주체가 다를 때 일어난다. 부모가 진 도박 빚을 갚는 자식들이나, 친구를 위해 선 보증으로 재산을 잃는 금전적인 사례부터 조별과제 무임승차나 쓰레기 무단투기 같은 흔하게 경험했을 법한 일들까지.

세상을 덮쳐버린 코로나 사태도 그렇다. 유흥을 위해 이태원을 찾은 사람들, 종교적 신념을 위해 모인 단체들, 비용 때문에 방역수칙을 외면한 기업들, 그들은 빚을 졌다. 그리고 그 빚은 국민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정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 나아가 자신의 자유를 죽이며 조심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대신 탕감되고 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빚을 질수 있다. 물질적이든 심적이든, 원했던 원치 않았던 모든 인과관계 속에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거다. 내가 내린 결정이나 선택, 혹은 곧 하게 될 행동들이 어떤 빚을 늘려가는 일인지, 그리고 그 빚이 타인이 갚게 될 빚인지, 또 어쩌면 내게 더 크게 돌아올 빚인지 생각해봐야만 할거다.
유지은 기자 yooje8@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긴박했던 6시간] 윤 대통령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2.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국회 본회의 가결
  3. 계엄사 "국회 정당 등 모든 정치활동 금지"
  4. 충남대, 공주대와 통합 관련 내부소통… 학생들은 반대 목소리
  5. "한밤중 계엄령" 대전시-자치구 화들짝… 관가 종일 술렁
  1. 계엄사 "언론·출판 통제…파업 의료인 48시간 내 본업 복귀해야" [전문]
  2.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3. 갑작스런 비상계엄령에 대전도 후폭풍… 8년 만에 촛불 들었다
  4.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5. [사설] 교육공무직·철도노조 파업 자제해야

헤드라인 뉴스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정기국회 등 올 연말 여의도에서 추진 동력 확보가 시급한 충청 현안들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다시 연기된 2차 공공기관 이전부터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 충남 아산경찰병원 건립,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구축, 중부고속도로 확장까지 지역에 즐비한 현안들이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 지역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과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단 지적이다. 3일 오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4일 새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등 밤사이 정국은 긴박하게 돌아갔..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는 4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국내 유망기업 7개 사와 1195억 원 규모 투자와 360여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아이스펙 한순갑 대표 ▲㈜이즈파크 정재운 부사장 ▲코츠테크놀로지㈜ 임시정 이사 ▲태경전자㈜ 안혜리 대표 ▲㈜테라시스 최치영 대표 ▲㈜한밭중공업 최성일 사장 ▲㈜한빛레이저 김정묵 대표가 참석했다. 협약서에는 기업의 이전 및 신설 투자와 함께, 기업의 원활한 투자 진행을 위한 대전시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신규고용 창출 및 지역..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이 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빠르면 6일부터 표결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본회의 의결 시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은 이날 오후 2시 43분쯤 국회 의안과를 방문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세종갑)이 참여했다. 탄핵안에는 윤 대통령이 12월 3일 22시 28분 선포한 비상계엄이 계엄에 필요한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