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이유를 찾는 건 생존의 본능이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일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렵고, 예측하지 못했던 만큼 순식간에 머릿속을 잠식한다. 상흔이 클수록 원인 없이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슬픔은 칼이 되어 마음을 향한다.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을 겪은 거야. 나만 잘하면 괜찮을 거야. 자신을 찌르며 비극을 받아들인다.
"머리는 내 실수로 다친 것이고 멍도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 계모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7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숨진 아이는 사망 한 달 전에도 머리를 맞아 병원을 찾았었다. 병원에서 아이의 상태를 본 뒤 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고, 아동보호기관이 아이를 상담했다. 머리를 왜 다쳤는지, 몸에 멍이 왜 생겼는지 묻는 질문에 아이는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당시 상담한 아동보호기관 측은 아이의 눈빛과 행동을 봤을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호기관의 눈에 아이의 말이 거짓말 같지 않았던 건, 정말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마도 사소하고 평범한 실수로, 혹은 까닭 없이 맞았을 아이는 자신의 고통 앞에 이유를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엄마에게 맞은 거야.' 맞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아서 슬프다.
'내가 저항하면 엄마가 맞으니까.' 열두 살 때부터 15년간 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했던 딸도 비슷한 이유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 성폭행을 당할 때부터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고, 말을 조금이라도 듣지 않으면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감금했다. 딸은 일주일에 한번 꼴로 성폭행을 당했고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네 번의 임신중절을 겪어야 했다. 성인이 된 뒤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자 내내 방관해 온 어머니와 함께 또 폭행을 당했다. 이 지옥 앞에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는 말은 끔찍하게 가볍다.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를 때 이유를 만드는 것은 악마의 본능이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가정 폭력의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저항하거나 벗어나려고 할 때 '네가 잘못해서 가정이 흔들린다'는 식으로 압박을 준다. 생존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에, 가족관계가 붕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린 피해자들을 옭아맸다. 인면수심의 자기 합리화는 겪어선 안 되는 일을 당하는 피해자가 스스로를 탓하고 타인에게 말하지 못한 채 버티게 만들었다.
비극이 일어났을 때 진짜 이유를 알려 주는 건 세상의 몫이다. 맞는 이유가 자신이 잘못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잘못은 때리는 사람에게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안일하게 대응한 어른들 때문에 많은 아이가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고 목숨까지 잃었다. 아이를 때리는 부모는 보호자가 아니다. 폭행 가해자, 범죄자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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