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단오풍정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단오풍정

양동길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6-1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폭염이 기승이다. 코로나19에 무더위까지 빨리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잠깐 활동에도 땀이 비 오듯 한다. 어느새 물이 그립다. 뿐인가, 시민은 물론 모든 생명체의 안전이 심히 염려된다. 특히 옥외작업자에게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잠시 더위를 식혀보자.

논산 들판은 지금 보면 그리 넓지 않다. 게다가 들판 가운데로 고속도로가 지나가 이제는 오히려 좁아 보인다. 멀리 계룡산과 미륵산이 보인다. 가까이, 산이라고 하기엔 뭐한 구릉이 여기저기 있다. 필자는 그 구릉 중 하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제강점기 설치한 수리시설이 지나간다. 그조차 가깝지도 않다. 탑정호에서부터 흘러온 물이 들판은 물론 많은 마을을 지난다. 모든 논을 거치고서야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수리시설은 수리조합이라 불렀다. 어려서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다. 농민의 지배와 수탈을 위해 일제가 식민농업정책 일환으로 설치한 것이다. 생산성을 높여 착취를 더 많이 하려는 의도였으나 공사비와 수세 모두 농민에게 부담시켰다. 이에 수리조합반대운동이 거셌다. 나아가 독립운동 성격도 강하게 띠고 전개되었다. 1921년 전북 익산과 강원 철원을 시작으로 1934년까지 전국에서 지속 되었다.

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보니, 물길이라야 개천이 전부인 곳이다. 수리조합은 대단히 큰 물길로 보였으며, 여름이면 아이들에게 좋은 물놀이장이 되기도 했다. 수리조합 둑이나 들판에는 작은 나무조차 없다. 여름이면 벼가 만든 짙은 녹색의 바다와 푸른 하늘이 전부이다. 뜨거운 햇살만 모여 뛰어논다. 거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수리조합, 바닥이 패여 조금 더 깊은 곳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떠돈다. 듣기로, 남녀가 노는 장소만 달랐을 뿐, 밤에는 어른들도 물놀이를 즐긴다 했다.



부처도 강에서 목욕하고 보리수 밑에서 깨우침을 얻었다. 육신의 때뿐인가, 마음의 때를 씻는 의미가 강하다. 때문인지 불가에서는 식욕과 배설 같은 본능과 다를 바 없이 중요히 여긴다고 한다. 연구자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날 대중목욕탕이 신라 사찰의 목욕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목욕을 즐기는 일은 민간에서도 다르지 않아, 고려 시대에는 하루 서너 차례 목욕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큰 강에서 남녀가 어울려 목욕을 즐겼다 한다. 다만, 여자는 목욕용 모시 치마를 착용했다고 전한다. 그러던 것이 유교 영향으로 의식과 풍습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목욕 문화도 퇴색하나, 야외에서 목욕을 즐기는 일은 계속되었던 모양이다.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 ~ ?, 조선 도화서 화원)의 《단오풍정(端午風情)》(신윤복필풍속화첩, 28.2 × 35.2㎝, 간송미술관, 국보 제135호)이 그를 대변해 준다.

ㅇㄹㅇㄹ
신윤복 《단오풍정(端午風情)》
단오는 여름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이다. 연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어서 으뜸 명절로 지내기도 했다. 잔치나 굿판이 열린다. 갖가지 세시 풍속이 전한다. 장신구나 부채, 부적을 만들어 돌리기도 하고, 창포 끓인 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즐겼다.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며 열리는 축제였다.

깊은 산중일까? 보기만으로도 시원한 계곡물에 웃통 벗은 여인네 넷이 치마를 걷어붙인 채 몸을 닦고 있다. 팔, 머리, 얼굴을 닦거나 서 있다. 나름 물을 즐기는 모습이나 마음 까지 시원하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느낌이다. 오른쪽엔 물건이 잔뜩 든 보따리를 머리에 인 아낙이 언덕을 오르고 있다. 풍만한 가슴이 저고리를 비집고 나와 세상 구경이다. 화폭의 중앙 가까운 곳에 노란 저고리와 붉은 치마 입은 여인이 그네에 오르고 있다. 목욕하는 여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미 목욕을 끝냈을까? 그 뒤로 두 여인이 머리를 매만지며 앉아 있다. 고목의 늘어진 가지 아래로 두 아이가 보인다. 바위 틈새로 목욕하는 여인을 몰래 훔쳐본다. 몹시 집중하고 있다. 까까머리인 것으로 보아 동자승이 아닌가 싶다. 남정네의 속내를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림의 앞에서부터 글로 옮겼지만, 시선은 그네에 오르는 여인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자연스레 끌려간다. 단오 맞이로 하는 몇 가지 풍습을 담았다. 자연과 인물이 잘 어우러져 있다. 본래 한복 곡선이 아름답지만, 의상의 선이 참 우아하다. 신윤복의 다른 그림도 다르지 않다. 과거의 작품에서 여인의 알몸을 화제로 삼는 경우는 춘화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다. 서양에서조차 누드화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인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는 모두 다르지만, 미적 감동은 크다.

신윤복은 무엇을 그리고 싶었을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을까? 이런 장면을 보기나 한 것일까? 어떤 미적 쾌감을 주고 싶었을까? 함께 찾아보자.

작가는 끊임없는 성찰로 창작 활동을 지속한다. 성찰에는 의도적 차별화가 포함된다. 뭔가 달라야 한다. 바꿔말하면 긍정적 문제의식이다. 한가지, 성찰의 대상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양지가 부상되었다, 음지가 강조되었다 하는 것이다.

양동길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취임 100일 인터뷰] 황창선 대전경찰청장 "대전도 경무관급 서장 필요…신종범죄 강력 대응할 것"
  2.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5.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1. 경무관급 경찰서 없는 대전…치안 수요 증가 유성에 지정 필요
  2.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3.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4. 세종시 50대 공직자 잇따라 실신...연말 과로 추정
  5.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중부권 최대 규모 크리스마스 연출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