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우리들의 1년은…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우리들의 1년은…

강규이 조치원 명동초 교사

  • 승인 2020-06-12 09:39
  • 수정 2021-06-24 13:48
  • 신문게재 2020-06-12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강규이
강규이 조치원 명동초 교사
조치원에 위치한 12학급 규모의 작은 학교. 그곳이 내 교직 생활의 첫 시작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학급을 꾸려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학급 규칙을 정할 때는 물론이고, 교실 안에서 작은 갈등이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학급 회의를 열었다.

이전까지 학급 회의를 몇 번 해본 적이 없다던 아이들은 횟수를 거듭하며 점차 학급 회의에 익숙해졌고, 몇 달이 지난 후에는 학급 내에 문제가 생기면 "학급 회의를 열고 싶어요." 하며 내게 말하곤 했다.

이것을 첫걸음으로 하여 나는 학급 내 대부분의 것을 학급 자치를 통해 해결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이것에 익숙해지면서 농담으로 "회의 열어, 그럼! 그러면 되잖아!" 하고 외치며 웃고는 했다.



초반에는 문제 해결을 위해 학급 회의를 열었던 아이들이, 점차 나에게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학급 회의를 진행했다. 그중 하나가 학예회였다.

초등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학예회를 아이들은 의미 있게 꾸미고 싶어 했고,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주제를 '성장'으로 한 연극을 하기로 정했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대본은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짤지, 연습은 어디서 할 것이며 누구를 어디에, 어떤 역할로 배정할지 등 모든 것을 아이들이 정했다.

나는 무대 의상을 주문하는 등 아이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해주고서는 조용히 무대 아래에서 아이들의 연습 과정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성장해온 모습 이외에도 부모님께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했고, 그 결과 학예회에 오신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대를 보던 다른 학년 아이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학예회를 끝낸 아이들을 보며 주제와 정말 잘 어울리는 무대였다고 생각했다. 성장이라니, 너희는 이미 충분히 성장했구나. 앞으로 더 큰 길을 스스로 걸어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 다른 하나는 졸업 영상이었다.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초등학교 졸업식 날을 아이들은 즐겁게 보내고 싶어 했다. 여러 아이디어 중 립덥(lip dup, 음악에 맞춰 립싱크를 하는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상물) 영상을 찍기로 결정하고 노래 가사를 부분 부분으로 나눈 후, 모둠을 나누었다.

그리고 모둠별로 자신들에게 배정된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협의했다. 가사를 그대로 표현하기도 했고,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어 그림을 그리거나 칠판을 꾸미기도 했다. 또한 학교 정문에서 시작해 우리가 졸업식을 하는 강당까지 쭉 이어지는 동선을 짜며 아이들은 우리 학교를 마지막 날에 전부 다 볼 수 있다며 좋아했다.

이 과정 모두가 학생 자치를 통해 민주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아이들은 더 열정적으로 영상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영상을 찍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졸업식 날 자신들이 만든 립덥 영상을 보며 졸업이라 슬퍼서 우는 와중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종업식과 동시에 졸업식이 끝났고, 아이들과 나의 1년도 끝이 났다.

1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참 긴 시간이었다. 졸업식 날, 학급 회장에게 "마지막 인사하자, 우리." 하고 말하던 그때.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게 무색해질 정도로 눈물을 참을 수 없던 그때. 또 볼 수 있다며 나중에 꼭 학교로 찾아오겠다고 말하던 너희. 첫 교사 생활을 무사히, 그리고 행복하게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첫 제자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제나 밝게 웃고, 긍정적이며, 때로는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줄 아는 아이들이, 나는 지금 너무나 보고 싶다.

/강규이 조치원 명동초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