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지만, 연인으로 만나던 상대에게 장미 한 송이를 받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 종일 함께 보낸 그날, 늦은 시간까지 꽃을 받지 못하자 결국 성년의 날이니 장미꽃이 받고 싶었노라고 투정부리듯이 말해버렸다.
그는 집 안에 있던 빨간 색종이를 꺼내 연필로 장미 비슷한 꽃을 쓱쓱 그렸다. 그리고는 색종이를 건네주며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장미라고 말했다.
미리 그려 놓았던 거라면 그의 말대로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장미가 됐을 지도 모르겠다. 갖고 싶다고 졸라서 받은 거라는 생각에 기쁘지 않았다. 몇 해 뒤 그림을 잃어버렸다.
#2. 십 수 년만에 꺼내 본 중학생 시절 친구들의 편지에는 '답장 달라고 해서 받으니까 좋아?'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자신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편지를 먼저 주고는 답장을 해달라고 얼마나 졸랐으면 저렇게 적어줬던 걸까. 받은 편지가 진심으로 고맙고 좋으면 누구든 조르지 않아도 답장을 보냈을 것이다. 좋아서 편지를 보내고선, 편지를 줬다는 이유로 마음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듯 행동했던 모습이 한심했다.
답장을 조르던 중학생에서 장미꽃을 바란 대학생을 지나, 삼십대 중반이 됐지만 마음은 쉽게 자라지 않았다. 인간관계의 초점이 '너를 바라봐도/좋은 선물해도/나를 알아주지 않아/나를 알아주지 않아'라는 자우림의 노래 '파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대답을 조르는 메시지와 선물이, 없는 마음을 선불해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면서도 달라지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에 무력감을 느꼈다.
#3.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은 옛 회사 선배와 나눈 대화에서 얻었다. 그는 9년 전 겨울 퇴근인사를 건네러 온 자신에게 따뜻한 캔 커피를 건네줬을 때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추우니까 손 따뜻하게 하고 가라는 당부도 함께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서야 기억이 났다. 그가 퇴근하기 전 미리 따뜻한 음료를 사둔 다음, 뜨거운 물 안에 넣어서 식지 않게 보관했었다.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걸 알고 춥지 않게 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바라는 것 없었던 호의는 건넨 사람의 기억 속에선 묻혀 있었지만, 받은 사람에겐 온기로 남아있었다.
'당신보다 예쁜 꽃은 못 그려요.' 성년의 날 받았던 장미 그림 옆에는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그림은 사라졌지만 그 말은 지금도 생각이 나고 고맙다. 타인에게 틔우고 싶었던 마음과 타인에게 심어진 마음은 자꾸 달랐다. 살면서 많은 선물을 잃어버렸고 많은 마음을 잊어버렸다. 억지 부리지 않아도 잃어버리는 게 많은 세상이다. 따뜻한 말들만이 오래 남았다. /박새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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