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목표는 금동고개에서 보문산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대전둘레산길 1구간이었다.
노선버스를 타고 한적한 마을을 달리는 동안의 기분은 가벼움 그 자체였는데 고갯마루에 내리니 이미 햇살이 퍼져 때 이른 더위가 훅 느껴지며 만만치 않은 하루를 예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를 핑계로 운동을 저버렸던 몸은 시작부터 천근만근이다. 한 숨 두 숨 오르다가 완만한 길에서 겨우 웃기를 반복하며 이사동 전망대에서 대전을 조망하고, 오도산 정상 찍고, 구완터널 위를 거쳐 보문산으로 향했다.
울창한 숲은 아니지만 간간이 다리도 쉬고 목도 추길만 한 벤치가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화장실이 없는 게 큰 문제였다.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이야 이 정도 거리이면 짧은 시간에 주파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여성이 대부분이겠지만, 마음 놓고 물도 마시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여성들은 이곳을 찾지 않고, 여성들이 없으면 남성들도 없지 않겠는가. 대전둘레산길이 더 많은 사랑을 받으려면 신경 써야 할 점인 것 같다. 여하간 필자는 땀을 쏟는 만큼 물 마셔가며 보문산 기슭까지 도달했다.
눈앞에 큰 길이 나타나고, 이 길을 가로질러 오르면 시루봉으로 향한다고 한다. 망설여졌다.
이미 다리는 풀려버렸는데 1.3Km 이상 오르막길을 가고 다시 3Km 정도 내려올 것을 생각하니 이대로 강행하다가는 일행에게 폐를 끼칠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큰 길 따라 오월드로 내려가자고 제안하니 일행은 선선히 1구간 완주를 접어주었다. 그래서 걷게 된 행복숲길은 한낮 내리쬐는 햇빛과 살랑거리는 금계국의 찬연함으로 눈이 부셨다.
굽이굽이 걷는 동안 시루봉으로 오르는 안내판이 뒤늦은 도전의식이라도 자극하는 듯 몇 번이고 나타났다. 도전과 선택, 전날 밤에 보았던 TV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크로스 오버 남성 4중창을 구성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마지막 라운드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의 선택을 하게 한다.
출연자들은 듀엣 파트너를 선택해 서로 경쟁도 하고 다른 팀과 겨루기도 하고 트리오, 쿼텟 등으로 나아가며 끊임없이 누구와 무엇을 부를지 선택과 도전을 하는데, 그러는 동안 4중창 3팀만 남고 나머지는 탈락하게 된다. 그들은 경연 점수에 따라 때로 선택하고 때로 선택을 당한다. 마치 선택의 연속인 우리네 삶처럼.
흥미를 끄는 점은 출연자들이 성악가뿐만 아니라 뮤지컬 배우, 국악 소리꾼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는 실력파 보컬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 제목이 시사하듯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능력자들도 있다. 지난 시즌에서는 어느 회사 연구원이었던 비전공자가 포함된 그룹이 1등을 하였으니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시청자로서는 이런 점에서 꿈을 향해 열린 세상을 보는 것 같아 신선하고 즐겁다.
게다가 멋지고 감동스러운 점은 그들이 파트너를 선택하고 도전하는 태도이다. 얼핏 생각하면 경연이므로 자기가 더 돋보일 수 있게끔 짝을 이루려고 머리를 쓰리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함께 노래해보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였다.
물론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끼리 구성하기도 하는데 이들의 대반격 또한 도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일단 팀을 정하면 발성의 팁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가사 발음을 고쳐주기도 하는 등 각자의 강점으로 파트너를 보완하며 하모니를 이루고자 매진하니까 그 결과는 당연 감동 스럽다.
선택과 도전의 아름다움은 누구의 것일까?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 꿈을 쫓는 사람? 자신을 믿는 사람? 포기하지 않는 사람? 아, 오르지 못한 시루봉에 한나절의 고단함을 전하는 하산길이다./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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