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구두쇠는 얼른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들더니 죽을상이 되어 벌벌 떨었다. 그제야 조륵은, "되었소, 이제 올라오시오"하고는 "큰 부자가 되려면 예사로운 구두쇠 정도로는 안 됩니다. 만사를 죽기를 각오하고 실행한다면 목적한 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전라도 구두쇠는 조륵의 사랑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 사랑방은 방문을 몇 년째 내버려두었는지 창구멍이 뚫어져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전라도 구두쇠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창호지 조각을 꺼내어 저녁밥을 먹을 때 남긴 밥풀 두 알을 붙여서 대충 창구멍을 막고 잤다. 그러고는 아침에 조륵의 집을 나서면서, "조공! 문에 발랐던 종이는 내 것이니 뜯어 가렵니다"고 하였다. 조륵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암요, 떼어 가시오"하였다.
그리하여 전라도 구두쇠가 많은 것을 배웠다는 기쁨에 활개를 치며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와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조륵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전라도 구두쇠 앞으로 온 조륵은 턱에 받친 목소리로, "그 창호지는 손님 것이니 가져가도 좋지만, 종이에 묻은 밥풀은 우리 집 것이니 떼어놓고 가야 마땅하지 않소"라고 한다.
전라도 구두쇠가 할 수 없이 창호지를 내어주자, 조륵은 준비해 온 목침 위에다 종이를 펼쳐 놓더니, 칼로 밥풀자리를 박박 긁어내어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갔다. 전라도 구두쇠는 놀라기도 하면서 "과연! 과연!"하고 탄복하며 집으로 갔다.
이렇듯 지독한 조륵의 자린고비 행색이 마침내 조정(영조)에까지 알려졌는데, 조정에서는 조륵의 이러한 행위가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해친다고 판단하고 정확한 사실 여부를 알기 위해 암행어사를 파견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씨(李氏)성을 가진 암행어사가 과객 차림을 하고 조륵의 집에 가서 며칠 묵으며 사정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암행어사가 며칠 묵는 동안 보아하니, 조륵은 한양에서 소문으로 듣던 그 자린고비 조륵이 아니었다. 암행어사라고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은데 식사 때마다 진수성찬(珍羞盛饌)에 술까지 대접하고, 그야말로 칙사(勅使) 대접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수소문해 보니, 조륵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누구에게나 후(厚)하게 대하고, 어려운 이웃을 불러다가 돈과 쌀을 주는 등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암행어사가 사정을 알고 그만 떠나려고 인사를 하자 조륵은 "아니, 이삼일만 더 있으면 제 회갑(回甲)날이니 기왕지사 좀 더 쉬었다가 잔치 상이나 받고 가시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어사는 못 이기는 체하며 잔칫날까지 묵게 되었는데 그날 조륵은 환갑잔치에 모인 사람들에게 "여러분, 그 동안 나는 나 혼자 잘살려고 구두쇠 노릇을 한 것이 아니었다오. 오늘 찾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재산을 모은 것이오. 그동안 안 먹고, 안 쓰고 재산을 모았지만 환갑날인 오늘부로 내 구두쇠일은 모두 끝난 것 같소"라고 하면서 그 동안 자린고비로 굽어지고 꼬였던 세간의 오해와 미안함을 풀었다.
그러면서 석공을 불러 앞 냇가에 다리를 놓고 둑을 쌓아 황무지 땅을 개간하여 굶주린 이웃들을 위해 농지를 무상으로 분배해주었다. 그리고 전라도, 경상도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전 재산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암행어사는 임금께 조륵의 이러한 선행을 자세하게 고(告)하였고 임금도 가상(嘉尙)하게 여겨 친히 벼슬을 내리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조륵은 자기가 했던 일은 당연한 일이라며 왕이 내린 벼슬을 사양하였다. 그리자 조륵에게 도움을 받은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조륵을 '자린고비'가 아닌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송덕비(頌德碑)를 세우고 칭찬하였는데 여기에서 '고'자는 "나를 낳아준 어버이" 란 뜻이다.(자인고비:慈仁考碑, 어버이같이 인자한 사람을 위한 비석이라는 의미)
아무튼 조륵은 일생동안 모은 재산을 뜻있는 일에 보람 있게 다 써버리고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만석꾼의 자식이었건만 유산다운 유산 하나 받지 못한 자식들에게 그가 남긴 말은 "네 복은 네가 얻어 살려무나"라고 했다고 한다.
명심보감에 복(福)은 청렴하고 검소한데서 생기고, 덕(德)은 자기를 낮추고 물러섬에서 생긴다(福生於淸儉 德生於卑退,복생어청검 덕생어비퇴)…… 이하 생략
오늘 필자는 자린고비의 고사를 통해 개인, 조직, 나아가 위정자(정치를 하는 사람들)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춘추시대 은자(隱者)였던 갈관자(?冠子)의 천측편(天則篇)에 있는 말로써 '一葉蔽目不見泰山 兩豆塞耳不聞電霆(일엽폐목불견태산 양두색이불문전정)'으로 잎사귀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볼 수 없고, 콩 두 알이 귀를 막으면 천둥소리도 듣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눈이 어두우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물론 자기가 속한 모든 조직과 사회는 멍들기 시작할 것이요, 지나치면 결국 망할 수밖에 없게 됨을 명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린고비를 실천한 조륵이 비록 지독한 구두쇠였지만 후에 전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돌려주는 따뜻함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린고비 정신이 '코로나19'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되기를 기대한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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