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전설에 따르면 원나라로 공출된 찔레라는 처녀가 10년만에 고향을 찾아와 병들고 늙은 아버지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온 산천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고향 근처에서 죽고 말았답니다. 그때 찾아 헤매던 골짜기 산 개울마다 찔레의 넋은 흰꽃으로 피어났고 그 목소리와 착한 눈물은 향기가 되었다지요. 그래서인지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어린시절의 추억이 실루엣으로 남아 그 찔레꽃을 보다가 요즘 핫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요. 울컥하는 안스런 생각에 문득 이해인 수녀의 「찔레꽃」이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무리 외쳐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구 꺾으려는 손길 때문에// 나의 상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남모르게/ 내가 쏟은 하얀 피/ 하얀 눈물 한데 모여/ 향기가 되었다고// 사람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당신이 내게 말하는 순간// 나의 삶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축복으로/ 다시 피어났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기구하고도 절절한 사연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미스터트롯이나 아침마당의 예능프로를 봐도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를 보통사람으로 살아온 우리들이 다 헤아릴 수야 없지만 그렇다고 6월의 낙화로 강물에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지요. 모두가 숨죽이며 내일이 아닌 것처럼 외면할수록 아픈 과거의 상처가 축복이 될리야 없지만 깊고 큰 상처의 향기는 오랫동안 남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시시비비를 차치(且置)하더라도 정부의 간섭 없이 자발적으로 조직된 비영리시민사회단체인 NGO의 개념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45년 UN헌장에 이 용어가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하긴 2차세계대전 이전에도 반노예협회, 국제적십자사, 아동구호기금 등 세계적으로 700여 개의 NGO가 이미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도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신간회가 있었지요. 그러나 본격적인 NGO가 출현한 것은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 6월 항쟁 이후입니다. 경실련, 참여연대 등이 낙천 낙선 운동 촛불시위 등 정치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NGO활동을 주도해 왔습니다. 지금은 만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NGO단체가 있으며 우리 대전만 해도 500여개 단체에 회원수만도 15만명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대전시민 10명 중 1명이 비영리단체에서 공익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건전한 시민 활동의 튼튼한 뿌리가 정착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반증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내 NGO들이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영세하고 열악한 재정으로 자금 흐름이 불투명하고 조직운영이 폐쇄적이라는 우려와 함께 선거철이 되면 NGO의 중심축을 흔드는 정치권의 추파가 커다란 유혹이 되어 NGO와 은밀한 커넥션으로 지나치게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NGO는 본질적으로 비정부 비영리적 비정치적 비종교적 조직으로 사회의 구석진 곳을 비추는 빛과 소금의 역할이 태생적 출발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의 정치적 목적이나 사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NGO는 스스로 도덕적 중립과 투명성의 생명을 성찰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올바른 몸가짐을 하는 지신(持身)으로 예기(禮記)의 '구용(九容)'과 생각과 지혜를 수양하는 논어의 '구사(九思)'를 율곡선생께서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 기록하였지요. 이 구용구사 중 눈은 마음의 깃발이고 눈높이와 마음의 높이는 같으니 눈을 단정히 두라는 목용단(目容端)과 옳지 못한 것을 가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견득사의(見得思義)의 정념실덕(正念實德)을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런지요.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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