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싼 게 비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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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싼 게 비지떡'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0-06-08 08:19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송복섭 교수
송복섭 교수
직업이 건축가이기도 하다 보니 종종 건축설계 일을 부탁받기도 한다. 건축허가 관련 실무야 건축사사무소를 통해 이뤄지지만, 그 전 단계인 기본계획 수준의 작업 아니면 믿을 만한 사무소를 소개해주는 정도의 일을 의뢰받는다. 부탁하는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건물을 설계해달라고 주문한다. 공간이 충분히 편리해야 하고 외관도 아름다워야 하며 면적은 법정한도 내에서 최대한 넓어야 하고…….

그런데 마지막은 대개가 최소한의 비용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공사비뿐만 아니라 설계비도 시중가격 수준으로 맞춰달라는 얘기다. 여기서 주문자가 말하는 시중가격이란 업계에서는 덤핑이라고 얘기되는, 건축업자가 주도하고 건축사사무소에서는 허가용 도면제작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격을 의미한다. 한술 더 떠 어디 남는 도면 하나 있으면 공짜로 달라는 사람도 있다.

오랜 시간 공부와 경험을 쌓아 이룬 기술을 이렇게 헐값으로 요구하다니……. 황당하게도 들리겠지만, 실제 벌어지는 일이고 오랫동안 관행처럼 내려오던 현실이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도 나아졌겠지만, 실내디자인 설계비는 명세서에서 지워 가구값에 숨겨야 했고 조경설계비도 나무 가격에 포함됐었다.

희한하게도 고도의 문화예술 값은 서비스라는 명목 아래 자취를 감추고 눈에 보이는 물건에만 가격이 매겨지는 후진국 풍토가 아직도 여전한 것 같다. 어디 물건 하나만 허락 없이 가져가도 절도범으로 처벌받는 세상에 애써 이룬 전문성을 그리 쉽게 얻으려 하는지…….



때로는 생계의 이유로, 때로는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맡았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공들여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대답은 자명하다. 그래서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등장하는 것이다. 당연히 최소한의 노력을 들일 것이고,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검토보다는 당면한 요구만 처리할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건물 관련 사고는 대부분 원인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싼 건축재료 사용이 대형 화재사고를 키우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세심하고 애정 어린 설계가 생략된 건축은 두고두고 밉상이며 생활의 불편을 초래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관행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공공에서 민간자본을 유치해 시행하는 대형 사업은 공공 기여라는 명목 아래 거금 희사를 강요받는다. 관에서는 여분으로 얻어진 예산으로 별도의 사업을 추가로 수행할 기회를 얻고 그 일에 주도적으로 역할 한 담당자는 이 일을 업적으로 삼겠지만, 그 여파는 과히 칭찬받을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다.

혹여라도 과하게 책정됐을까 봐 꼼꼼하게 예산 내역을 따져 사업금액이 정해졌건만, 공공 기여로 사업비가 빠져나간다면 부족분을 어디서 충당하겠는가? 결국, 값싼 재료에 손을 대거나 하도급 업체를 닦달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이가 더해 가며 확신이 쌓이는 명언 중에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말이 있다. 횡재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을 수 있고, 노력 없이 얻은 성공은 불안정해 그 끝을 재촉한다. 인터넷 주문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혹여나 사은행사에 마우스를 클릭했다가는 며칠 후 여지없이 상품광고 전화를 받게 된다. 하물며 공짜 술을 얻어먹어도 마음의 빚이 남는다. 공짜가 주는 기쁨은 아주 짧고 남겨지는 수고는 아주 길게 간다. 우리는 이미 어려운 시대를 지나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기대가 고급스러워진 만큼 걸맞은 품격과 아량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싼 게 비지떡'이라고 말은 많이 들었어도 먹어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찾아보니 싼 게 비지떡의 원래 유래는 좋은 뜻이었다고 하는데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는 낙인이 붙은 지 오래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콩비지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넣고 반죽하여 빈대떡처럼 둥글넓적하게 부쳐 만든 것이 비지떡이라는데, 사진을 보니 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장마철이 조만간 시작된다는데 막걸리와 곁들일 비지떡 파는 곳을 수소문해야겠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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