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
아파트 견본주택에 들어서는 순간, 갓 구운 빵 냄새와 향긋한 커피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냄새를 맡은 방문객들은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그러면서 이 아파트에 살면 행복한 일만 생길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뇌에 새겨지고, 구매 욕구는 솟아오른다. 건설사가 내세운 '냄새 마케팅'은 분양 조기마감이라는 쾌거를 끌어낸다.
우리는 이미지에 열광한다. 이미지를 통해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미지로 총체 된 현대문명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자신의 책「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이는 1999년 개봉한 워쇼스키 자매 감독의 영화 '매트릭스'에 핵심적인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영화는 그 출처를 밝히듯 장면 초반, 네오가 해킹 소프트웨어를 숨겨놓았던 책으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보드리야르의 이론 중 특히, 처음 가졌던 실제의 모습은 잃고, 그 실재와 무관한 상태에 이르는 '시뮬라크르'는 흔히 접하는 영상광고 속에서 순기능적 역할을 여실히 보여준다. 초코파이 '정(情)', 맥심커피 '행복', SK그룹 '청춘' 등…. 초코파이 과자가 왜 '정'을 대변하는지, 통신사 광고에서 왜 '청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엔 불가능한 조합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여러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듯 'A는 B다'라는 구조주의적 해석을 과감히 부정하는 이론을 기반으로 둘 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오리온 초코파이의 단일상품 매출이 연간 1000억 원이라는 믿지 못할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제 제품의 품질이나 기능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소비할 때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에 담긴 기호, 즉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실재 상태와는 무관하게 이미지를 통해 받아들여지는 감정에 따라 욕망하고 저항한다. 오늘도 우리는 이미지를 먹고, 입고, 타고, 들고 다닌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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