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우 교수. |
프레너미란 말도 참 재밌는 말이다. 사회심리학 용어라지만 현대인들은 참으로 복잡한가보다. 오늘의 동반자가 내일의 적이 되고야 마는 상황을 보면서 감정의 찌꺼기로 남아 개운치 않은 소모를 하고 털어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프레너미는 친구와 적이라는 합성어이며 혐오 또는 경쟁자인데도 친절한 사람 또는 적의 특성을 함께 갖는 사람이다. 프레너미란 말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 말의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비즈니스 파트너십에서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서서히 비공식적인 작업환경과 사람의 직업과 개인 생활을 연결하는 밀접한 관계가 흔해서 그럴지 몰라도 프레너미식 관계는 비즈니스 거래 또는 경쟁에 대한 공통된 관심 때문에 일반적이 됐다.
보통 친구와 적은 동일한 사람인 경우가 있다.
즉, 자기 자신이 친밀한 친구인 동시에 적으로 내 마음에 감정적인 삶에서는 안 될 요소라는 것이다. 본인의 필요에 의해 다가가는 사람의 일방적인 관계, 그런가 하면 친구의 허락 없이 친구의 삶에 간섭하는 경우나, 겉으로는 칭찬과 친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겉과 속이 다른 적과 친구로 위장한 프레너미는 주관적인 생각으로 겉으로는 협력으로 이끌지만, 경쟁심으로 인해서 결국은 속마음이 들어나 버리는 상황이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프레너미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까?
마음을 추스르고 잊어버리려고 애써 위안하지만, 사람에게 느껴지는 마음이 가혹하다. 변해버린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다가오는 사람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그저 봄날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또 추운 겨울이 오듯이 계절과 인연은 지나가는 것이고 그 무엇도 한탄하지 말자고 내게 주입시킨다.
세월의 유연함으로 단단해 져 가는 것도 나이 듦의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사회현상이라지만 프레더미 관계가 많아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내게는 대처방안이 있고 훌륭한 방어기제가 있으니 다행이다.
그 일은 바로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다. 그림은 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걷는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움을 가슴으로 그리기 위함이다. 요즘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시국일 때나 관계에 심신이 지쳤을 때도 그림은 도피처도 되어주니 깊은 위안이다.
생활의 어려움은 내가 소유하는 일을 했을 때 만족감은 떨어진다.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 어려움이 있어도 멀리 내다봤을 때 만족감은 분명 더 있다.
앞으로는 소유하고 원하는 일보다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가까워졌다. 코로나로 인한 생활의 변화와 인식의 변화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테고 행복은 개인의 창의성을 성취해 가면서 살 수 있을 때 가능함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계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다 보니 몰랐지만, 코로나로 볼 수 있게 된 현 상황을 보면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렇듯 코로나 바이러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한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도 혼자 있는 일이다.
혼자서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내성만큼은 건실하니 조르바가 부럽지 않을 자신이 있다. 프레너미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풀어내서 형상화시켜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연구실에 와서 냉장고에 얼려둔 대봉감과 핸드드립 한 커피를 연하게 해서 마실 수 있는 지금이 나는 행복하니까... 오늘은 약간의 떡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더 간절해진 학생들과의 소중한 대면수업 시간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이영우 배재대 교수·대전 국제 아트쇼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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