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잔소리와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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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잔소리와 규칙

  • 승인 2020-05-19 13:18
  • 수정 2020-05-19 16:44
  • 신문게재 2020-05-20 18면
  • 이성희 기자이성희 기자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 남매가 있다. 예정된 3월 개학이 몇 차례 연기되며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첫째만 과학관련 학원을 다니는 걸 제외하곤 둘 다 집으로 오는 선생님들이 학습과 피아노를 지도해준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한 달간은 집으로 오는 선생님의 수업마저 듣지 않았다. 오롯이 집에서만 지내자 느는 건 아이들의 체중과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잔소리였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공부를 시키려는 엄마의 평행선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늘 승자는 엄마다. 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마지못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집안에선 잔소리가 잦아드는 듯 했다. 그러나 아내의 잔소리는 엉뚱한데서 또 시작됐다. 자기 전 누가 먼저 씻을 것인가를 놓고 두 아이가 가위바위보를 하며 다투기 시작했고 여지없이 아내의 잔소리가 들렸다. "누가 먼저 씻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어차피 씻을 건데 아무나 먼저 씻으면 안돼?" 아내의 잔소리에 그 순간은 해결됐지만 아이들은 씻는 걸로 몇 차례 더 다툼을 벌였다.

요즘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와 태블릿을 이용해 강의를 듣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둘째는 평상시 컴퓨터를 많이 다뤄보지 않아 컴맹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다보니 온라인 강의 초반에는 접속을 못해 누나의 도움으로 접속을 해 강의를 듣곤 했다. 그러나 첫째도 온라인 강의는 처음이라 능숙하게 강의를 마치지 못하는 날들이 종종 발생했다. 저녁에 퇴근한 아내는 아이들이 결석으로 처리됐다는 담임교사의 연락에 아이들의 온라인 강의를 다시 확인하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숙제를 늦게 한다는 이유로 또 글씨와 숫자를 알아볼 수 없게 엉망으로 쓴다는 이유로 아내의 폭풍 잔소리는 계속됐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향한 아내의 잔소리가 잦아들었다. 궁금증에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요즘 엄마의 잔소리가 많이 줄어든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어?" 아이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특별한건 없어요. 그냥 우리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고 계획표를 짜서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에요."



아이들이 짠 계획표를 봤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의 하루일과가 시간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침 8시30분부터 온라인 강의를 시작으로 점심 후 바로 숙제를 하고 밖에서 운동을 하는 등 구체적으로 짜여 있었다. 또한 아이들은 월, 수, 금은 둘째가 먼저 씻고 화, 목, 토는 첫째가 먼저 씻는 등의 규칙도 스스로 만들어 실천해가고 있었다. 규칙을 정해놓고 실천하는 모습에 아내도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듣기 싫게 필요 이상으로 참견하거나 꾸중하며 말함을 뜻하는 잔소리가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실천하게 해주니 그리 나쁜 건만은 아니었다. 이성희 미디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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