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작가 |
극장 개봉을 기다리던 영화들도 이제는 비대면 서비스의 강자인 넷플릭스로 옮겨가 공개되고 있다. 아마 한국영화로는 '사냥의 시간'이 그 필두가 아닌가 싶다. 극장에서 개봉할 작품들이 온라인에서 문전성시를 이루는 뜻하지 않은 이변이 찾아왔다. 반면 극장가는 줄도산이 우려될 정도다.
나는 얼마전 '오페라의 유령'을 유튜브롤 통해 봤다.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공연을 녹화한 영상이다.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자발적 기부를 유도할 목적으로 무료공개되었다. 뮤지컬 대작을 시쳇말로 방구석 1열에 앉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물론 공연장에서 느끼는 생생한 음향효과, 배우와 눈빛을 맞추며 그 숨소리마저 들릴 듯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한 친구는 이제는 유튜브 홍보 마케팅을 준비한다며 대형서점에 책을 깔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고 했다. SNS 홍보와 전자책 출간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출판물의 디지털화가 가속되고 있다. 책장 넘기는 소리는 이제 아날로그 감성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왠지 비대면 사회의 그늘이 드리운 곳에 역설적으로 언텍트 기반의 디지털화가 양지를 트는 느낌이다.
비대면(언택트)이란 용어는 2017년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처음 봤던 것 같다. 키오스크 같은 무인주문기의 등장과 전자상거래의 발달, 그리고 대인 접촉을 부담스러워하는 신세대의 소비 경향 쯤으로 치부했는데, 이제는 소비 일상을 넘어 산업 전반에 파급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한 재택근무가 보편화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고, 인터넷 주문이 폭증하는 플랫폼 사업자의 배달이나 택배 쪽으로 일자리를 잃은 서비스 노동자들이 몰린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쪽 일이 얼마나 많을지는 몰라도 미래직업 전망을 볼 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를 헤맬 것이란 예측이 더 우세하다.
앞으로 인간을 칭할 때, 사회적 동물이란 말보다는 '디지털 노마드'나 '언택트 디지털 종'이란 말이 더 빈번하게 쓰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디지털 족도 먹고 사는 일상의 사회관계, 가족이라는 집단관계, 결혼, 또는 연애라는 남녀의 대면관계는 항상 남아있다. 늘 밥 먹었나, 하는 부모님의 인사처럼 신체를 가진 인간의 욕구, 욕망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디지털 사회는 더 극명하게 부의 양극화와 대량 실업사태를 초래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가난한 자에게 인간의 욕구, 욕망마저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도 청년세대를 두고 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미래전망이 불투명한 90%의 노동자층에게 이 말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오히려 미래 따위는 잊으려 명품을 사고, 고급차를 선호하고, 유명 해외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오늘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빈정대기도 한다.
물론 청년세대에게는 언택트 기반의 4차 디지털 산업에 종사하거나 창업할 수 있는 기회를 더 확장해야 한다. 이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추세 또한 거스를 수 없다. 다만 국민 대다수에게 드리울 비대면 사회의 그늘에 대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최소한의 기본 욕구,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기본 소득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연극을 계속 하고픈 내 친구에게는 지금 그 어떤 공연 활성화 대책보다도 손에 쥐어주는 현금이 있어야 한다. 출판업을 하는 친구에게도 언택트 기반의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굶주림의 시간을 벌어 줄 기본소득지원 논의가 21대 국회에서는 필요하다.
김재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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