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가 강희안(姜希?, 1417 ~ 1464)은 조선 초 시서화 삼절로 이름을 날렸다. 학문도 뛰어났다. 그의 행적이 이를 대변해 준다. 정인지와 함께 정음 28자에 대한 해석을 붙인다. 1448년 우리나라 최초 운서(韻書) '동국정운(東國正韻)'을 집현전 직제학들과 함께 완성한다. 새로 주조한 활자 을해자(乙亥字)를 직접 쓴다. 지도 제작에도 참여했다. 심지어 명나라 옥새 글씨 '體天牧民永昌後嗣(체천목민영창후사)'를 쓰기도 한다. 빼어난 그림 실력도 여기저기 기록으로 전한다.
탁월한 예술적 재능에 반하여 예술에 대한 입장이 완물상지(玩物喪志)였다. 완물상지는 서경(西經) 여오(旅獒)에 나오는 말 '사람 가지고 놀면 덕을 잃고 물건 가지고 놀면 뜻을 잃는다(玩人 喪德 玩物 喪志)'에서 왔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에게 여나라 사신이 큰 개를 선물하자, 기뻐 그를 희롱하기에 여념이 없는 무왕에게 태보(太保) 소공(召公)이 한 말이다. 물건 가지고 노는데 정신 팔려 소중한 뜻을 잃어버린다. 나아가 물질에 매달리다 큰 뜻이나 목표를 상실하게 된다는 의미다.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요즈음 인식도 다르지 않아, 놀이에 빠진 자녀에게 부모가 늘 하는 말이요, 걱정하는 일이다.
성리학에서는 의미를 깊이 새기지 않으면서, 글자만 외거나 널리 알려고만 하는 거 또한 완물상지로 경계하였다. 이것이 더 확대되어 그림 감상이나 문예활동을 금기시하기에 이른다. 문예를 즐길 시간이 있으면 학문에 더 절차탁마(切磋琢磨)하라. 그림 그리기는 먹 장난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었다.
강희안은 평소 자식에게 "글씨나 그림은 천한 기술이니 후세에 전하면 도리어 이름만 욕될 뿐이다"라 일렀다. 사대부 본분이 아니라 생각했을까? 당시 유행했던 성리학에 반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따른 것일까? 드러내 놓고 자랑하지 않았을 뿐 속내는 달랐던 모양이다. 문신 김종직이 그러면 왜 그림을 그리느냐고 묻자, "그림은 내게 있어 천지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도구다"라 답했다. 격물치지(格物致知)로 학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벼슬에 회의적이었다. "한 세상에 나서 오직 명성과 이익에 골몰하여 늙도록 헤매고 지치다가 쓸쓸히 죽어가니 이것이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공허함 때문에 자연과 하나 되는 삶에 더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러함에도 살아남은 것은, 그의 학식과 인품이 워낙 뛰어나 죽어가는 주위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그만은 살려두어 활용할 것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피비린내와 함께 많은 벗을 잃은 마음이 오죽했으랴. 도가 사상에 심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성품 자체가 소박하고 청빈했다 하기도 한다.
세상일보다 글 읽고 꽃 키우는 일을 더 좋아했다. 집안이 온통 꽃과 나무였던 것으로 읽힌다. 게다가 달빛에 취해 옷깃 풀어헤치고 연못가를 거닐며 시 읊조리는 것으로 잠시나마 세상사를 잊으려 애썼던 모양이다. 당시로써 획기적이라 할 만한 원예서를 썼다. 괴석과 분재 만드는 법을 비롯하여 16종의 식물 키우는 법을 서술하였다. 전해오는 법과 이웃에게서 익힌 것, 스스로 터득한 경험을 엮은 책이 '양화소록(養花小錄)'이다. 자연 사랑이 넘쳐난다. 후대에 널리 익혀 다양한 필사본이 전한다.
운치와 절조가 없는 것은 완상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운치가 마음을 맑게 한다. 촛불을 이용하여 보는 법, 그림자로 감상하는 법, 설중매(雪中梅) 즐기는 법, 얼음이나 골동품을 이용한 감상법, 더불어 술을 즐기는 법 등 갖가지 완상법도 소개한다. 강희안 뿐만 아니라 당시 누구라도 격조 높은 풍류를 즐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희안 필 '고사관수도' 23.4 × 15.7㎝ ⓒ 국립중앙박물관 |
'고사관수도'에는 절벽 아래 바위에 엎드린 선비가 물을 응시하며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이 담겨있다. 강묵으로 처리한 육중한 암벽이 아무런 방해자가 없는 심심산골임을 느끼게 한다. 활달하게 늘어진 나무 만이 정적을 깬다. 우아하기 이를 데 없다. 선비의 풍류가 물씬 풍긴다. 세상을 관조하는 모습이 너무도 편안하다.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많고도 끝이 없지만 현묘하고도 현묘하여 제각기 이치가 있는 법"이라 한다. 비록, 하잘것없는 미물이라도 세상을 보는 창임은 다르지 않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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