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옥현 선생님 자혼 축하 차 서울 예식장에 가야 하는데 몸이 이러니 갈등이었다.
서 선생님 자혼 예식 장면을 머리에 그려보니, 우리 애들 남매, 엄마 없이 시집장가 갈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동하여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리를 같이해 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전세 관광버스에 올랐다. 알 만한 선생님들과 지인들이 좌석을 거의 다 채웠다.
관광버스 내 옆자리엔 오갈 때 앉은 분이 달랐는데 돌아올 때는 80년대 충고에서 같이 뫼시고 근무했던 박찬인 선배 선생님이 곁에 계셔서 심심찮게 내려왔다.
박찬인 선생님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 지도를 잘 하신 성실한 선생님의 표본이라서 내가 평상시 존경하고 좋아했던 선배 선생님이시다.
박 선생님은 80대 연세에 겨울에도 냉수마찰을 하실 정도 건강관리를 잘 하시는,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시는 선생님이시다. 작년까지 마라톤대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하여 훌 코스 완주하시던 그 노익장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서울서 대전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옆에 앉아계신 박찬인 선생님과의 세상 돌아가는 이러 저런 얘기며 양념 삼아 듣는 경험담에 무료하지 않게 내려왔다.
오늘은 내가 운이 좋은 날인가 보다. 그 누구한테서도 들을 수 없는 마음에 와 닿는 얘길 들었으니 말이다. 박 선생님한테 들은, 그 얘기 실타래를 풀어 보겠다.
어느 날 수업시간 중에 박 선생님 담임반 학생 하나가 울상이 되어 뛰어와 하는 말이, 가지고 온 책가방 속의 월사금 봉투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박찬인 선생님은 고민을 했다. 잘못했다가는 돈도 못 찾고 반 전체가 피차간 의심하는 불신 분위기를 만들어 학급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하다가 은행으로 뛰어가 자신의 통장에서 학생이 잃어버렸다는 그 액수만큼의 돈을 찾아 흰 봉투에 넣어서 담임 반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학생들이 청소를 하면서 쓰레기통을 비우려 하다가 그 돈 봉투를 발견하고, 없어졌던 돈 봉투를 찾았다며 헐레벌떡 뛰어와 신고를 했다.
그 바람에 반 분위기는 분란 직전에서 급반전되어 평온을 찾았다. 그 날 박 선생님은 몇 마디 훈화와 더불어 종례를 했다. 학생들은 모두 하교를 해서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박 선생님 담임반 학생 하나가 가지 않고 있다가 박찬인 선생님 앞에 다가와 무릎을 탁 꿇더니. 눈물이 글썽글썽한 모습으로,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그 돈 봉투 제가 가져갔습니다"하며 그 돈 봉투를 내놓더라는 것이었다. 박 선생님의 사려 깊은, 슬기로운 처사가 학생을 감화시켜 잘못을 뉘우치게 한 것이었다.
쓰레기통 속의 월사금 돈 봉투.
그건 바로 부처님의 자비를, 예수님의 사랑을, 모두 담은 박찬인 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람은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그런 행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데, 잘못을 뉘우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박 선생님은 학생에게 말씀하셨다. 그 말하기 어려운 일을 학생은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박 선생님은 그 학생의 참된 용기를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용서를 해 주셨다. 오히려 돈 봉투 가져간 것을 나무라기보다는 잘못을 반성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참된 용기를 칭찬해 주셨다.
그 후로 박찬인 선생님 반은 신뢰하는 담임선생님을 주축으로 반원이 똘똘 뭉치고 단합하여 무슨 일을 하든 천하무적이었다. 교내체육대회가 있다 하면 무조건 1위를 휩쓸고, 공부 면에서도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던 반이 서로 신뢰하고 단합된 힘의 위력이었는지 일취월장하는 학급으로 칭송이 자자했다고 말씀하셨다.
박찬인 선생님께서는 월사금 돈 봉투 도난사건을 슬기롭게 처리하고 지도하여 위기일발 직전의 반 분위기를, 학생들이 서로 신뢰하고 단합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급으로 만들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박 선상님의 슬기에 의한,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닌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둔 것이 아니겠는가!
박찬인 선생님은 그날 있었던 일은 평생 둘 사이만 아는 비밀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자고 약속하고 지금까지 살아오셨다고 하셨다.
박 선생님은 슬기로운 대처와 지도로써 태풍전야의 반 분위기를 급반전시켜 평온으로 바꿔놓으셨다. 박 선생님의 슬기로운 학생 지도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 당시 박찬인 선생님의 제재들은 전국 각계각처에서 내로라하는 존재들로 새로운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창출해 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화제의 주인공 최○○은 과학기술처에서 회계 관련 업무를 보는데 청렴결백한 공무원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바르고 정직하게 근무하는 모범공무원이란 얘길 하시며 박 선생님은 마냥 좋아하셨다. 또 이○○ 아산병원 제자를 비롯해서 이○수 카이스트 교수 제자, 하○○ 충대교수 제자, 엄○○ 대전시교육청 서기관 제자, 박○○ 회사 사장 제자, 운운하시면서 흐뭇한 미소를 연달아 흘리셨다.
나도 자랑할 만한 괜찮은 제자들이 좀 있지만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선 교육현장 학급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 보통 교사들은 전체학생들을 설득 시켜 자백을 받아내려 하거나 아니면, 눈을 감게 하고 조용히 손을 들라 한다. 이것도 아니면 애들한테 쪽지를 주고 지목이 가는 학생을 써내라는 치졸한 방법 등등을 동원하는데 그 어느 것도 효과는 없고, 반원 사이에 불신하는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좋았던 학급 분위기까지 걱정스럽게 만드는 것이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그런데 박 선생님은 보통 선생님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지혜로운 방법을 쓰셨다.
제 아무리 좋은 언변으로도, 달변으로도 설득할 수 없고, 얻어 낼 수 없는 것을 박 선생님은 명쾌하게 얻어 냈다. 정문일침이 되는 행동으로 속죄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참회의 무릎을 꿇게 했다. 박찬인 선생님의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학생 교화 기술과 인성교육 노하우가,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선생님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됐으면 한다.
아울러 학급의 도난사건을 계기로, 학생이 양심에 의해 정직하게 바르게 살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도하신 박찬인 선생님의 선각자다운 혜안과 지도 방법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생각해 보면 박찬인 선생님은 글만 잘 가르치는 경사(經師)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바르게 사는 그 됨됨이를 제대로 가르치는 인사(人師)로서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셨다. 박 선생님은 경사(經師), 인사(人師)의 자질을 다 겸비하신 정말 거인 교사로서 거목이셨다..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경사(經師)로서 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일쑤인데 박 선생님께서는 인사(人師)까지 겸하신 분이셨으니 마냥 존경스럽기만 하다.
박 선생님의 슬기로운 학생 지도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교육 현실이 떠오른다.
세상이 각박하여 학생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선생님들이 매도당하는 현실!
인간성 상실로 학교가 붕괴되고, 선생님들이 소신대로 교육을 못하는 현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현실이라서 안타깝기만 하다.
일선 현장의 선생님들이여!
현실이 어려워도 힘을 내어 수형(樹形)을 바로잡는 정원사로서의 스승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제자들은 교사들의 삶의 영수증!
이 영수증에 교사의 보람이 들어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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