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대병원 이승훈 의료원장 |
이러한 성과를 거두게 된 배경을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를 이겨낸 것은 일선 의료진의 헌신과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질병관리본부의 리더십과 방역 역량 그리고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정부의 시책을 잘 따라준 시민의식 덕분이다.
또 메르스 사태 이후 우리나라 병원의 감염대책이 강화된 것과 정부가 지원한 바이러스 진단법 연구의 성과도 큰 힘이 됐다. 병실 출입 통제 시스템, 감염 환자를 위한 음압진료소, 음압격리실이 병원에 증설됐고 새로 개발된 검사법으로 단기간에 엄청난 수의 검사가 가능해져 감염자를 조기에 진단해 격리 치료할 수 있었다.
투명하게 감염자 정보를 공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메르스 때에 개인정보보호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다가 감염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것을 학습한 결과다.
많은 전문가는 입을 모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비와 올가을의 2차 대유행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또 닥쳐올지 모르는 2차 감염에 대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항체 진단법의 개발이다. 현재 우리가 개발해 사용 중인 바이러스 직접 검출법은 앞으로 항체 검사와 함께 사용될 것이다. 항체 검사법은 바이러스 감염 후에 우리 몸에 생긴 항체를 조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항체 검사를 하게 되면 무증상 감염자도 알 수 있어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국민이 감염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고 예방 백신이 필요한 사람을 선별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검사법은 결과를 빨리 얻을 수 있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둘째, 예방 백신의 개발이다. 예방 백신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효과와 부작용 검증 단계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발돼야 한다. 셋째는 치료제 개발이다. 최근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인 렘데시비르를 이용한 효과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또 혈장치료법, 중화항체 치료제의 개발이 진행 중이다.
정부도 여기에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고, 국내 다수의 기업이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예방 백신이나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코로나를 앓고 치유된 환자의 혈액 샘플이 필요하다. 혈액 내의 항체를 이용하여 항체 진단법과 예방 백신, 그리고 중화항체 치료제를 만들 수가 있다.
최근 미국의 유명한 영화 배우인 톰 행크스는 SNS에 자신이 혈장을 기부하는 사진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 후 회복된 그가 바이러스 치료법 개발에 사용해 달라고 상당히 많은 양의 혈장을 기부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 수사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 오' 등에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 배우 다니엘 대 킴, CNN 앵커 부르크 발드윈과 크리스 쿠오모 등 유명 인사들이 연이어 자신의 혈장을 치료법 연구에 사용해 달라고 기증 의사를 밝혔다. 우리나라가 방역에 있어 모범 국가가 되었듯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있어서도 앞서가는 나라가 되려면 정부의 노력이나 의·과학계의 연구개발 말고 또 다른 차원의 국민적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동안 우리는 알면서도 지키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았다. 기침하면서 마스크도 쓰지 않았고, 독감에 걸린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보냈으며, 몸이 아파도 출근할 것을 강요하고, 회식에서는 술잔도 돌렸다. 새로운 인터넷 환경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재택근무, 화상회의, 온라인 강의 등을 받아들이기를 망설였다. 이제 우리는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생활 방역에 참여함은 물론 기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날 시기가 됐다고 생각된다./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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