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틈 민들레가 웃어준다. 담장 위 고양이가 한가로이 눈 맞춘다. 요란스런 큰길을 피해 단독주택이 늘어선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마주하는 풍경들, 온통 평화롭다. 생존경쟁에 노여워 파도치던 마음도, 코로나에 지쳐 답답하던 마음도 어느새 잦아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마주하는 세상은 차창 밖 세상과는 사뭇 다르다. 무표정한 일상에서 행복을 꺼내 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열네살 되던 해, 그때부터다. 하루 2번, 일주일에 12번씩 그 '고갯길'을 넘었다. 집 앞 초등학교를 탈출해 옆 마을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차멀미가 심했던 탓에 선택권은 없었다. 재잘재잘, 상기된 얼굴로 버스를 기다리던 여학생들과 새 자전거 자랑이라도 하듯 힘껏 페달을 굴리며 내달리던 남학생들. 부러워할 새도 없이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3년간의 뚜벅이 생활. 동네 어른들은 그 고개를 '3년 고개'라고 불렀다. 울퉁불퉁한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다다른 가파른 산비탈. 작은 여자아이에게 고난의 행군이나 다름없었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한 일주일쯤, 외로울 줄만 알았던 등·하굣길에도 하나 둘 길동무가 생겨났다. 선영이, 은희, 미순이….
바쁜 걸음으로 40분 남짓이던 등굣길과는 달리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점점 늘어 길게는 서너 시간의 여정이 됐다. 초여름 담장 너머로 빼꼼히 고개 내민 살구, 맛난 향내 폴폴 흩날리며 익어가던 자두. 뉘집 손주들의 몫인지는 모르지만 내게도 허락됐다(?). 햇볕 좋은 무덤가 너른 잔디뜰도 훌륭한 놀이터 였다. 반쯤 먹다 아껴뒀던 점심 도시락을 간식 삼아, 넉넉하게 품을 내어준 봉분을 등받이 삼아 때론 김소월이 되고 때론 피카소가 됐다.
그렇게 보낸 세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커진 몸집만큼이나 마음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혼자 걷는 길은 사색의 기쁨을 안겨줬고, 둘, 셋이 함께 걷던 길은 지금도 문득문득 고개 내미는 진~한 추억이 됐다. 없어진지 오래다. 옆 마을 시골중학교도, 한없이 정겨웠던 3년 고개도.
라일락 향기 나부끼는 퇴근길,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어르신들 틈으로 보이는 낯선 간판 하나. 낮은 처마아래 생뚱맞게 자리한 탓에 눈에 확 들어온다. ○○부동산. 문 안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 입은 사내들의 수상한 모습, 왠지 반갑지 않다. 혹시 여기도?
대전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진 도시개발 붐. 작은 땅덩어리 97곳이 재개발, 재건축,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거대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 곳도 그 손길이 닿은 모양이다.그러고보니 옆 동네에서는 벌써 몇달전부터 골리앗 닮은 크레인과 덤프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또 그 옆동네에는 개발보상 플래카드가 나붙은지 오래다. 자고 나면 세상 풍경이 바뀌는 시대, 천정부지 치솟는 부동산의 가치 상승과 맞물려 그 속도가 무섭다.
닭장 같은 아파트가 싫다고,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 살아보고 싶다고 입버릇 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실행해 옮기지 못했다. 이런 이기심 때문일까? 낡은 동네를 새 동네로 재창조하는 일은 결국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귀결된다.더 높이, 너 크게,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싹~다 갈아엎는' 방식으로. 뽑히고 헐리고 으스러지는 건물 잔해와 함께 수십년, 수백년 쌓인 삶의 흔적, 시간의 기록들도 함께 소멸한다.
무한 반복이기도 변화의 연속이기도 한 삶 속에서 한없이 편안한 심호흡을 허락해준 이 길, 머지않아 대가없이 누리던 이 골목길의 호사도 빼앗길지 모른다. 그 옛날 3년 고개처럼. 아쉽다. 사라진 것들이, 또 사라질 것들이…. 황미란 편집 2국 편집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