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이다. 숨 가쁘게 리듬에 얹어 한참을 열거한다. 이름이니 부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코미디언 서영춘(徐永春, 1928.8.25. ~ 1986.11.1.) 선생이 특유의 표정과 몸짓으로 외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름의 당사자는 지난 2월 유명을 달리한 임희춘(林喜春, 본명 임진상, 1933.8. 25. ~ 2020.2.2.) 선생이었다.
내용인즉 이렇다. 서대감이 어렵게 5대 독자를 얻어 유명 작명가에게 의뢰, 위와 같은 특별한 이름을 지었다. 작명가는 빠지면 죽는다고 단단히 주의를 준다. 부를 때 한자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것으로 알아들어, 부를 때마다 긴 이름에 곤욕을 치른다. 잘 자라던 아이가 어느 날 물에 빠졌는데, 서로 이름을 부르다 그만 시기를 놓쳐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워낙 인기 있다 보니 흉내 내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엔 흑백 TV로 보았지만, 후에도 여러 번 무대에 올려진 것으로 기억한다.
이름 속에는 장수하는 짐승과 사물, 역대 장수했던 인물 이름이 담겨 있다. 아는 바와 같이 거북이와 두루미는 십장생에 속한다. 동방삭은 삼천갑자 살았다는 전설 속 사람이다.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는 아프리카 최장수라고 설정된 가상 인물이라 한다. 워리워리 세브리깡은 그가 먹었다는 약초이다. 무두셀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수명이 가장 오래인 사람이다. 무병장수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며 힘이 센 사람이 되란 뜻이다.
작명법도 퍽 다양하다. 그에 대한 견해도 제각각이다. 서로 자기방식이 최고라 강변한다. 다만, 명명 대상이 무탈하게 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아 보인다. 역사 인물에게도 이름에 얽힌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있다.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는 중인 출신이다. 조선 4대 화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고, 3대 풍속화가로 꼽히기도 한다. 증조부까지는 하급 무반을 지냈으나 조부와 아버지는 그나마 벼슬하지 못했다. 20대에 화원이 되어 1773년 어용화사로 발탁된다. 화원으로 드물게 현감에 임명되어 충청도 연풍에서 1791년부터 4년여 봉직하기도 한다.
김홍도는 그림뿐만 아니라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으며, 풍류가 호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중인 출신이었으나 학문에 심한 갈증을 느꼈던 듯하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 내력인 듯,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홍도란 도를 넓힌다는 뜻 아닌가?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요,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란 논어 위령공편에서 따온 말이다. 도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사람만이 희망이란 말이다.
김홍도의 자는 사능(士能)이다. 맹자 양해왕 상 7장에 나오는 내용에서 가져왔다. "가진 것이 없어도 평상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 항산(恒産)이란 생활에 필요한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항산이 없으면 평정심을 잃는다. 평상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를 일삼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중심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 선비정신이다.
김홍도, 「김홍도 자화상」, 18세기, 43 × 27.5㎝, 평양조선미술박물관 |
사람은 배움의 길에서 세 가지 만남을 갖는다. 자연, 사람, 자신이다. 그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된다. 자신과 만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의 두 가지 만남도 자신과 만나지 못하면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스치는 바람이다. 그러나 스스로 내면을 살피거나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멀기만 하다.
화가는 자화상 그리는 것을 통해 자신과 만난다. 화가에 따라 다르지만, 다양하게 자화상을 남긴다.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화가의 성품이나 내면세계가 드러난다. 김홍도 역시 여러 폭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림은 그의 젊은 시절 자화상이다. 찬찬히 뜯어보자. 정갈한 성품과 의지가 그의 이름이나 자, 호에 담긴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뜻한 바대로 이룬다. 아울러 작명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고, 웅지를 담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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