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제작년도 미상)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
1986년 4월 김세중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동훈 회고전'을 준비하며 인사 말씀에 이런 글귀를 적었다.
"그림이란 어디까지나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며, 자신의 연구 태도를 확립하고 여기에 매진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타인의 작품을 참고로 자신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지만, 그것을 모방하는 등의 행동은 삼가야 한다."
이는 이동훈 작가가 살아생전 마음에 품고 후학들에게도 누누이 강조하던 예술가의 마음이다.
이동훈 작가는 1903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1928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차례 입선하며 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1945년 대전사범학교(현재 충남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했고, 정년 퇴임 후는 물론 1984년 작고할 때까지 대전미술계의 든든한 스승으로 남게 됐다. 대표적인 이 작가의 제자는 스테인드글라스 유리화가 이남규와 최종태 조각가가 있다.
이동훈 작가의 화풍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나 자연의 정서가 담긴 향토성이다. 주로 자연을 그렸는데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봤던 화가의 마음이 읽히는 순간순간이 엿보인다.
유성의 봄(1963)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
만추의 농촌(1978) 대전시립미술관 소장품 |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동훈 탄생 100주년이었던 2003년 기증작가특별전 열었다.
당시 전시 리플릿을 살펴보면 "풍경화가로서 이동훈은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시골길을 걷다 마주치는 평범한 한국의 풍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이는 머리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직접 다리품을 팔고 눈으로 확인해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정감으로 한국의 농촌, 산, 들의 실재를 찾아내려고 했던 그의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냉정한 관찰보다는 따뜻한 애정으로 바라본 풍경을 담아내던 작가의 예술관에 한발 다가가는 메시지다.
2012년 발행된 이동훈 평전 '조선땅 풍경의 화가 이동훈, 예술과 생애' 서평에는 "왜색이 침투하고 전통이 탈색돼 망가진 민족정기를 가장 한국적인 풍경화로 복원한 화가다. (생략) 그가 살아온 삶은 우리 근대사와 함께하면서 한국 근대미술사를 이끌어 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꾸준히 국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특정 주의나 계파,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일화는 꿋꿋한 화가이자 스승의 면모를 보여준다. 대전사범고 미술교사 시절 제자를 양성하면서 충남미술협회를 재건하며 지역미술을 활성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대전·충청 지역에 미술의 씨를 뿌리고 가꾼 이동훈 작가의 업적을 기리며 대전시와 이동훈 작가의 제자들은 2003년 이동훈미술상을 제정했다. 2009년부터는 중도일보가 주관을 맡아왔고, 제17회 미술상부터는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이동훈기념사업회와 대전시가 공동 주최하고 있다.
제1회 이동훈미술상은 장리석 작가가 본상을 받았고, 김형구, 정점식, 서세옥, 장두건, 전혁림, 강태성, 이종학, 변시지, 안동숙, 박창돈, 박서보, 김영재, 전영화, 최의순, 임봉재 그리고 제17회 미술상에서는 단색화의 대가 하종현 작가가 본상을 수상했다. 미술계 거목들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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