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시인과 이동훈 작가, 민경갑 작가는 사후에도 여전히 불멸의 존재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들의 생애와 예술적 혼을 따라가 보자. <편집자 주>
박용래 시인. 사진=대전문학관 |
'저녁눈'과 '겨울밤' 등 주옥같은 시를 남긴 박용래 시인이 떠난 지 올해로 41주기를 맞는다.
박용래 시인은 대전의 대표 향토시인으로 자연주의적 서정 세계를 개척하며 '눈물의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보문중학교와 한밭중학교, 대전철도학교에서 근무했던 박 시인은 1965년 대전시 오류동 17-15번지(현재 오류동 149-12번지)에 정착하며 문인으로서 활동을 지속해 나간다.
첫 시집 '싸락눈'이 한국시인협회 주관 오늘의 한국시인선집으로 출간됐고, 시 '저녁눈'은 현대사학사 제정 제1회 작품상을 수상했다.
1971년에는 한성기, 임강빈, 최원규, 조남익, 홍희표 등 대전의 시인들과 시집 '청와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1975년에는 제2시집이자 시선집인 '강아지풀'이 오늘의 시인총서로 출간됐고, 문학사상에 에세이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를 연재하며, 현대시인선으로 제3시집 '백발'을 출간하며 시 세계를 확장해 왔다.
그러나 1980년 7월 교통사고로 입원을 하면서 그해 11월 심장마비로 작고하며 대전 문학계는 눈물의 시인과 영원히 이별해야 했다.
사후에도 박용래 시인의 시 '먼 바다'와 '백발의 꽃대궁'이 시집으로 출간돼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박용래 시인의 시는 반문명, 반사회, 반현실적인 것들을 시적 기반으로 삼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형성하는데 주력했다. 누님의 죽음,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혼란과 6.25를 고스란히 겪은 시대적 감각이 시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셈이다.
박용래 시인의 흔적은 대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사후 4년 만에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 '박용래시비'가 세워졌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말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저녁 눈 (1979년 2월)
시비에는 시인의 대표작인 '저녁 눈'이 새겨졌다.
박용래 시인의 문학의 거점이라 볼 수 있는 집터에도 표지석이 있다. 박용래 시인의 집터는 보존되지 못한 채 현재는 공영주차장으로 변모했다. 시인의 옛 집터 표지석은 중구청과 한국문인협회가 2009년 세웠는데, 표지석에는 '오류동의 동전'이라는 시를 새겼다.
한 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 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이었다가
한 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이였다가
중국집 처마 밑 조롱 속의 새였다가
먼먼 윤회의 끝 이제는 돌아와 오류동 동전 -오류동의 동전 (1984년 11월)
대전문학관은 박용래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시각적, 청각적 비유에 의지해 단조로운 톤을 활용해 간명하고 섬세한 묘사를 즐긴다. 동양적 여백의 미를 추구해 짧은 시행, 반복과 병렬구조, 전통적인 민요조 리듬, 명사나 명사형 어미를 주로 사용했다"며 "간결하면서도 응축적인 구어를 사용해 깊은 서정적 여운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박용래 시가 지닌 큰 특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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