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교수 |
기업과 고객이, 학생과 교사가 만나지 못하고, 스포츠나 예술 행사가 열리지 못하는가 하면, 교인이 교회에 가지 못하고 각종 집회 등이 봉쇄되고 있으며, 가족 행사조차 자제되고 있다. 이는 적절한 방역을 위하여 소위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의 장려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권에서 'social distancing'으로 명명되기 시작한 이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위하여 불가피한 조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표현을 접하는 필자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가 않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데 사회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건 인간의 본질에 반하는 모습이 아닐까? 방역을 위해 대면 접촉을 자제하는 것이야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더 나아가는 건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를 부인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위기일수록 우리는 더욱 연결되고 가까워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지만, 더 큰 고통의 귀속자들은 요양원의 어르신들이나 영세자영업자들과 같이, 흔히 말하는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 아니던가. 이들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우리 사회 전체가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경하기 위해서라면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더욱 가깝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멀어질수록, 거리를 두면 둘수록 이들이 설 자리는 없기에 그렇다.
무슨 말이냐? 공동체가 코로나 전염병 사태와 같은 대규모 재난을 겪으면 겪을수록 오히려 사회적으로 더욱 긴밀히 연대하고 협력해가야만 하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자는 것은 그 표현과 방법이 잘못됐다는 말이다. 오히려 사회적 거리를 좁혀야 위기 극복이 가능한 것이기에 그렇다.
왜냐하면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어감 속에는 심리적으로, 관계적으로 더욱 '멀어지기'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할 것은 직접적인 대면 접촉으로, 신체적이나 물리적 거리 두기가 필요한 것이지, 사회적, 관계적 거리 두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물리적 접촉이 어려울수록 관계적으로는 더욱 가까워지도록 모두가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용어 속에 우리도 모르게 마음마저, 관계마저 멀어져가도록 방치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제 적어도 국내적으로는 코로나 사태는 소강 국면에 들어섰고, 세계적으로도 어느 시점에 가면 진정될 것이다. 그에 따라 잔뜩 움츠러들었던 우리 사회도 다시 기지개를 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심리적 거리 두기는 좀체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번 멀어진 사이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리적, 신체적 접촉 자제는 계속 유지해야겠지만 심리적, 관계적 거리는 좁혀져야 한다. 교사는 학생에게, 기업은 고객에게, 정부는 국민에게, 이웃은 이웃에게 더욱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사그라진 공동체적 역동성이 살아날 것이요, 그곳에서 꺼진 경제도 살아날 것이다. 아니,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 본질이 회복될 것이다. 이제는 'social distancing'이 아닌 'social nearing' 운동을 깊이 생각할 때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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