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양심을 색맹으로 살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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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양심을 색맹으로 살아서야!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4-2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말에 색맹과 색약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은 의학용어로서, 국어사전에 색맹이란 말은 색채를 식별하는 감각이 불완전하여 빛깔을 가리지 못하거나 다른 빛깔로 잘못 보는 상태 또는 그런 증상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나와 있고, 색약은 빛깔을 판별하는 힘이 약한 시각의 증상을 가리킨 말로 명시되어 있다.

신체적인 결함에서 눈의 역할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정도에 따라 색맹, 색약이 구별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심심치 않을 정도의 사람들이 양심을 색맹으로 살고 있어 그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요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말에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란 단어가 있다. 즉 돈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 곧 약자는 죄가 없어도 유죄로 판결 받고,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은 죄가 있어도 무죄로 판결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법원의 모든 판·검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그런 나리들이 있어 법복(法服)을 입은 모든 이들에게 불신의 눈길이 따라다닌다고 보아야겠다.

법관 임용 시 판·검사들이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와 같은 선서문을 제창하고 시작한 법관이 양심색맹으로 변질되어 간다니 통탄스런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부 판·검사들 얘기라 하지만 그 모두에게 불명예스런 또 다른 옷을 입혀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의도 진실도 실종돼 가는 허탈감 속에 못돼 먹은 자가 헛기침하는 세상이 됐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는 최근에 사위와 딸이 예약해 놓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차를 가지고 왔다. 며칠 남지 않은 내 생일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기특한 마음을 거절할 수 없어 사위 차를 탔다. 사위 차 앞엔 영업용 개인택시가 굴러가고 있었다. 갈마동 고갯길을 내려가다 KT연수원 바로 정문앞에서 신호를 받아야 했다. 좌회전 신호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데, 앞에 있는 영업용 택시가 신호를 무시한 채 턴을 하고 있었다. 색맹으로 간주 받을 신호위반으로 반대편서 질주해 오는 차량과 충돌할 뻔했다.

도로 옆 바로 그 손님을 태우려고 신호 위반까지 하면서 손님 앞에 차를 세웠다. 손님은 운전기사를 이상한 표정으로 훑어보더니 그를 따돌리고, 바로 뒤 오는 다른 차를 타는 것이었다.

양심색맹의 운전기사한테 자신의 생명을 맡기기가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양심 색맹'의 기사를 따돌린 손님이 참 잘 했다는 생각에 고소한 마음까지 생겼다.

운전기사가 돈 조금 더 벌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는 양심색맹이라니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아찔하게 했다. 양심색맹의 욕심 때문에 끔찍한 사고를 저지를 뻔하였다.

나는 천주교에 입문할 때 주교님한테 영세를 받았다. 그 때 인상 깊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된다. 양조장을 하던 주교님의 이모부가 천주교 신앙을 갖기 전에는 막걸리에다 물을 타서 팔았는데 세례 받고 신자가 된 후에는 막걸리에 물을 타서 파는 일이 없었다는 얘기였다. 양심 색약이나 양심 색맹자의 위태로운 상황에서 본연의 양심을 되찾게 된 일화라 하겠다.

얼마 전 이야기인데 나도 하나 고백할 것이 있다. 여명의 시간에 새벽 미사를 가기 위해 성경책가방을 챙겨 밖에 나갔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 날도 30분 정도 거리를 걸어가려 했으나 시간이 늦어서 차를 끌고 나가려 서둘렀다. 급히 서둘다보니 옆에 있는 차를 슬쩍 건들여 경미한 미동이 느껴졌다. 운전대를 놓고 곧장 나가 살펴보니 옆 차 왼쪽 앞 범퍼가 표가 날 듯 말 듯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차주도 모르고 지나갈 상황을 긁어 부스럼 만들어 생돈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을 번뜩였다.

미사 시간이 촉박하여 시동 걸린 차를 그냥 끌고 성당에 갔다. 미사 봉헌 시간 내내 불안하여 견디기가 어려웠다. 미사 봉헌 후는 언제나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이었는데 오늘은 웬 일인지 흐린 날씨에 불안 초조까지 맥질을 하는 것 같았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돌아와 경비실 아저씨께 이실직고했다. 경비실에 비치한 차량 등록기록부를 보고 차주를 알아내어 주인을 찾아갔다. 차주는 내가 사는 아파트 306동 2라인 15층에 거주하는 청년이었다. 사실대로 얘기했다. 불안해서 자수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리비용이라도 지불하고 마음 편케 살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젊은이는 차 도색한 지가 오래 돼서 정비소 가려던 참이었는데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자기에게 줄 돈 있으면 차라리 불우이웃 돕기에 쓰라고 했다. 정말 마음 씀씀이 훌륭하기가 백만 불로도 모자라는 장원 감이었다.

거친 세상 양심 팔아먹고 사는 사람도 많지만 이렇게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냄새 풍기며 살려하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청년 덕분에 밝은 마음으로 기분 좋은 일과를 시작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살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호를 위반하는 사람도 있고, 꼬박꼬박 신호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

교통신호를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걸 안 지키면 대형사고까지 유발되어 소중한 생명까지 잃을 수도 있고, 사회 전체에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우리 눈의 색맹과 색약은 개인의 불이익이나 손해로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인성의 양심을 지키지 않는 색맹 색약은 그렇지 않다.

양심을 색맹으로 사는 사람은 자타의 피해는 물론 사회에 끼치는 공해까지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되겠다.

사회의 모든 부정부패와 비리는 양심색맹·색약의 행동에서 오는 것이다.

일정한 궤도 위를 운행하는 천체가 궤도를 이탈하면 그 이탈 순간 그 천체는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양심색맹으로 살다가는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자초하거나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청신호에 가야 할 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고 적신호에 질주하다 원귀의 넋이 되는 불행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

양심을 색맹으로 살다가 사회를 비리로 얼룩지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

아니, 양심색맹으로 선량한 시민까지 피해를 입히는 일이 있어서도 아니 되겠다.

양심을 색맹으로 살아서야!

양심색맹은 과도한 욕심과 함수관계에 있다.

욕심으로 많은 것을 챙기려다 양심색맹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신호등이 있어도 색맹은 색맹의 눈으로 사고를 불러온다.

우리의 양심이 색맹이어서는 모두의 불행을 면할 수 없다.

따뜻한 가슴으로 살기 위해선 양심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

양심색맹에서 따뜻한 가슴, 사람 냄새를 기대할 수 없으리라.

양심을 색맹으로 살아서야!

이쯤에선 우리도 양심색맹으로 숨 쉬는 건 아닌지 맥을 한 번 짚어 볼 일이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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