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대전의 명산 보문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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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대전의 명산 보문산을 오르며

염재균/수필가

  • 승인 2020-04-23 09:21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절기상으로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곡우(穀雨)가 이틀 지난 4월 22일(수요일)에 지인으로부터 보문산을 찾아 산행을 한자는 연락이 와 흔쾌히 수락을 하고 학교에서의 당직근무를 끝내자마자 집으로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등산용 배낭을 챙겨 오전 8시 40분께 집을 나섰다.

4월 중순이라 따뜻한 날씨를 기대했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 날 따라 바람이 심하게 불어대고 차갑게 내려간 기온 때문에 '오늘 산행은 고생 좀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나오는 바람에 배낭에는 산행할 때 마시는 물 한 병이 전부라 마트에 들러 먹을 만한 과일 좀 사려고 했지만 영업시간이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고 해 발길을 돌려 인근에 있는 김밥 집을 찾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도록 2인분의 김밥을 사서 배낭에 넣고 버스정류장으로 가 보문산 오거리로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승객들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승객들이 많지 않아 다행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옆자리를 살펴보니 누군가 먼저 내린 손님 좌석에 물을 적셔놓아 무심코 모르고 앉았더라면 바지를 버릴 수 있었다. 남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시민의식이 아쉽다.

차는 평일이라 교통흐름이 원활하여 보문산 오거리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보문산 입구로 향하는 길의 양옆으로는 보리밥을 파는 식당들이 눈에 많이 뜨이고 환경개선을 위해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문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이미지를 줄 것만 같아 보인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케이블카가 오르고 내렸던 예전의 붐볐던 곳인데, 지금은 철거되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 아쉽게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싶다. 약속시간인 오전10시가 되자 하나둘 모이고 보니 일행은 모두 7명이었다. 반갑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새로운 인사방법인 악수대신 손등으로 인사를 나눈 후 철학관이 모여 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보문산을 여러 번 산행을 해봤지만 이번에 가는 코스는 처음으로 가는 곳으로 소나무 숲길에 낙엽이 떨어진 솔잎들이 발걸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것 같았고 아직도 남아있는 철쭉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산행을 하는 우리들을 반겨주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산등성이로 나있는 등산길은 오솔길 같이 평탄하게 이루어져 있어 산행하기엔 힘들지는 않았지만 불청객인 세찬 바람은 차갑게 우리의 체온을 앗아가 잠시라도 쉬지를 못하게 요술을 부리는 것만 같다. 잠시라도 쉬려고 하면 세찬바람이 우리들에게 사납게 덤벼들어 온몸을 냉기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면서 보문산 기슭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온다. 학생수가 10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학교인데 몇 년 전에 리모델링하여 산뜻한 모습으로 변모한 학교다. 공기 좋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어 학생들의 정서순화에 도움이 많이 될 것만 같아 예전에 교육계에서 몸담고 있다가 정년퇴직한 필자로서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오늘따라 바람은 하늬바람이 아니라 등산을 하지 말라는 경고인지 조심하라는 무언의 충고인지 쉬지 않고 차갑게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다. 제법 평탄한 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포장된 길이 나온다. 근처에는 망향탑이 숲에 둘러싸여 외롭게 서있다.

망향탑은 1985년 12월 27일 이북5도민 중 대전과 충남지역에 거주하는 60만 실향민들의 망향의 한을 달래고 고향선영에 망배도 올리며 8.15와 6.25이후 자유를 찾아 월남한 실향민과 후손들에게 나라사랑과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산 교육장이 되게 하고자 뜻을 모아 1990년 6월 20일 준공한 것이라 한다는 표지판의 설명을 읽고 모두들 숙연해졌다. 산행을 하면서도 나라사랑과 망향의 서러움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득해진다.

일행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힘든 산행코스 대신 완만한 코스로 보문 산성으로 가기로 했다. 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대부분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심스럽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니 어느덧 산등성이에 다다랐다. 바람은 더욱 더 세차게 우리를 쫓아다니며 불어대는 것 같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힘들게 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정도 지나 간식을 먹기 위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한참을 헤맨 끝에 찾아내 각자 준비해 온 간식인 부침개와 김밥, 돼지꼬리와 닭 무침 등을 펼쳐놓고 서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술인 02린소주와 따뜻한 커피로 약간의 허기진 육신을 위로하는 자리를 가졌다.

산행은 언제나 안전하게 사고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곳 보문산은 대부분 마사토가 많은 미끄러움이 많은 비탈길이라 항상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다간 미끄러져 부상이라는 사고를 당하기 때문이다.

간식시간이 끝나고 머물렀던 자리를 깨끗이 청소한 후에 보문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는 영산홍과 철쭉이 아름답게 자태를 자랑하며 음지쪽에는 꽃망울을 터트리는 중이고 양지바른 쪽에서는 만개하여 사람들이 꿀벌처럼 모여들어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곳의 보문산성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0호로 해발 406m의 산 정상부에 테를 두르듯 돌을 쌓아 만든 석축 산성으로 백제시대 말기 신라와 치열한 전투를 하던 시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성의 둘레가 300m 정도로 규모는 작지만, 인근의 산성들과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지형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인 성(城)이었다고 표지판은 설명하고 있다.

일행은 보문산성에 올라 주변의 경치도 구경하고 휴식도 취하려고 했지만 세찬 바람에 사람들이 날려갈 것 같아 아쉬움을 뒤로한 채 눈에 띄는 외롭게 식재되어 있는 황금 송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하산을 서둘렀다.

산행은 오를 때보다 하산하는 길이 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경사진 계단과 비탈진 곳이 많은 마사로 이루어진 하산하는 길은 미끄러운 곳이 많아 일행 모두는 조심조심 하면서 목재체험관이 보이는 포장된 길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목재체험관이 있는 이곳은 예전에 아이들이 즐겨 찾던 추억의 어린이공원이 있던 자리였다. 놀이기구 하나라도 더 타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옛 생각에 젖어 본다. 교통이 혼잡하고 구경하기 힘들어 사람들이 하나둘씩 줄어들면서 아마도 적자운영 때문에 추억 속으로 사라진 것은 아닐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산행 후에 기다리는 것은 다함께 얘기를 나누는 점심시간이다. 산행을 하고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는다는 보리밥 식당을 찾아갔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입구에 30분 이상 기다리고 있는 대기표를 받은 분들이 눈에 많이 보였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웬일인가 싶어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 집은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식당인지 안에는 손님들로 항상 만원이다. 모두들 채소와 된장국, 고추장이 들어간 뷔페 같은 보리밥을 비벼먹으며 산행 후 허기진 배를 조금씩 채워가며 앞으로의 산행에 대한 의견이 오고가는 즐거운 식사자리가 되었다.

헤어지기가 아쉬워 인근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겨 아메리카노 한 잔에 잘 튀겨진 꽈배기를 한 입 물고 여유의 시간을 가졌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오늘 산행을 통하여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일행과 같이 산행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필자가 살고 있는 중구에 시민모두가 사랑하고 찾아오는 보문산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힘들고 지칠 때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는 돈도 별로 들이지도 않고 자연을 벗으로 삼아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같이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약 3시간 정도의 산행은 필자를 비롯한 일행 모두에게 무한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하루빨리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괴롭고 슬픈 일에서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는 자연과 친구가 되는 기회를 갖도록 가까운 산을 찾아 땀 한번 흘러보는 것은 어떨까 권해보고 싶다.

염재균/수필가

6-염재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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